실명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1665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물품·도구/물품·도구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강정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성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작 시기/일시 1835년연표보기 - 강정리 실명기 제작
보수|복원 시기/일시 1927년 - 강정리 실명기 보수
현 소장처 원강정 마을 회관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강정리 원강정 마을 지도보기
성격 농기(農旗)
재질 무명베
크기(높이,길이,너비) 420㎝[가로]|260㎝[세로]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강정리 원강정 마을에 있는 농기.

[개설]

진안군 마령면 원강정 마을에 있는 실명기는 농기의 일종이다. 두레가 조직되어 주로 논매기 때 들고나가는데, 기에 어떤 그림도 없이 하얗다는 데서 유래한 명칭이다. 현지 주민들은 실명기 보다 주로 ‘설멩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설면(雪綿)[눈처럼 하얀 비단, 또는 광목]’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강정리의 실명기는 1835년에 처음 제작되었고, 1927년에 보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강정리에는 같은 해에 제작된 용대기도 함께 전해지는데, 현재 마을 회관에 보관되어 있다.

[형태]

강정리 실명기는 크기가 가로 420㎝에 세로 260㎝이다. 기의 위아래는 검은 천으로 지네발을 만들어 부착하였는데 아래쪽 넓이가 22㎝이며, 위아래 각각 19개씩이다. 실명기의 위아래 좌측에는 지네발과 바탕 사이, 그리고 깃대의 천과 바탕천 사이에 각각 23㎝ 넓이의 검정천이 바느질로 잇대어 있다. 재질은 무명베이다.

[특징]

강정리 실명기의 위아래에 있는 검은 천과 왼쪽에 있는 검은 천의 색깔이 다르다. 왼쪽의 검은 천만 이미 상당히 탈색되어 있는데, 위아래에 있는 검은 천은 나중에 새롭게 보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실명기의 왼쪽, 즉 깃대에 고정시키는 쪽의 흰 바탕에는 “창조 도광 십오년 칠월 일(創造 道光 十五年 七月 日)”, “수보 갑자 년 음칠월 일 강정리(修補 甲子 年 陰七月 日 江亭里)”라는 글자가 쓰여 있다. ‘도광’은 중국의 연호로 도광 15년은 서기 1835년이다. ‘갑자’년은 본래 ‘소화 삼년(昭和 三年)’이라 쓰인 글자를 지우고 그 위에 덧입힌 글자이다. 소화 3년이면서 갑자년은 1927년이니까 이 기는 1835년에 제작되고 1927년에 보수된 채 지금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실명기는 두레 때만 영기와 함께 일하는 논에까지 가지고 가서 꽂아 놓으며, 풍장을 칠 때는 실명기로 기 놀이를 펼친다. 원강정 마을실명기용대기보다 더 낡았는데, 용대기에 비해 실명기를 더 빈번히 사용했기 때문이다.

[의의와 평가]

진안군은 전라북도의 동북부 산간 지역으로 임야가 경지 면적보다 월등히 높다. 반면에 마령면은 진안군 내에서 경지 면적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지역으로 꽤 넓은 평야를 끼고 있는 곳이다. 따라서 진안군에서 농경문화의 전통을 확인하는 것은 매우 드물지만 마령면에 농기가 보존되어 있다는 것은 그만큼 가치와 의의가 크다고 하겠다. 원강정 마을에 보존되어 있는 실명기용대기는 제작 시기도 오래되었고, 그림의 수준도 높은 편이며, 보존 상태도 양호해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문화유산이자 유물이다. 농경문화의 대표격인 농기에 대한 영구적인 보존 대책이 시급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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