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13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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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淸白吏梁灌 |
영어공식명칭 | Yang Gwan of Clean Goverment Employee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우명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남기민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2년 - 『함양군사』3권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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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인물담 |
주요 등장 인물 | 양관|이색[이측]|이천영|성종임금 |
모티프 유형 | 인물담|역사담|전기 |
[정의]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우명리에 양관과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채록/수집 상황]
2012년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군사 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함양군사』3권 407쪽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양관은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효리[우명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3년간 덕천군수를 지내고 돌아갈 때 짐이 달랑 괴나리봇짐 하나였다. 나룻배를 함께 탄 선비가 양관의 봇짐 속을 궁금해하여 보고자 하였다. 양관의 봇짐 속에는 소학, 두보의 시집, 거문고, 학 그림, 삼베 이불뿐이었다. 3년간 고을의 수령으로 있다가 돌아가는 사람의 짐으로는 너무 초라한 것이었다. 양관의 봇짐을 확인한 선비는 양관이 맑고 검소하다는 소문을 듣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임금이 파견한 암행어사였다. 그는 양관의 청렴함에 탄복하여 그의 선정과 치적을 임금에게 알렸다.
임금은 양관을 통정대부로 승진시키고 의주목사로 임명하였다. 의주에서도 그의 청렴함은 예전과 같았고, 이 사실을 암행어사 이천영이 임금에게 보고하자 임금은 그를 가선대부로 승격시키고 양관의 이름을 청백리에 기록하였다. 임금은 관직을 사임하고 돌아올 때 양관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게 하고 관리들에게 본받기를 명하였다. 양관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사직하였고 경상남도 함양군에 ‘일로당’이라는 정사(精舍)를 짓고 기거하였으며 후손 교육에 힘썼다.
[모티프 분석]
「청백리 양관」은 조선전기 실존 인물인 양관(梁灌)[1437-1507]의 일화로 구성된 인물담이다. 양관·이측·이천영·성종 등 실존 인물이 이야기에 등장하며, 실제 있었던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으므로 역사담으로도 볼 수 있다. 양관의 청백리로서의 삶을 몇 가지 일화로 제시하고 있으며, 백성들에게 선정(善政)을 베푼 청렴한 목민관으로서의 그의 치적과 그에 따른 임금의 포상을 주요 소재로 하고 있다. 출생과 벼슬아치로서의 행적,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간 다음의 행적까지 기록하고 있어 양관이라는 인물의 전기(傳記)라고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