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07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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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林希茂 |
영어공식명칭 | Im Heemu |
이칭/별칭 | 언실,남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동석 |
출생 시기/일시 | 1527년 - 임희무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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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52년 - 임희무, 남계서원 건립 |
몰년 시기/일시 | 1577년 - 임희무 사망 |
출생지 |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 서평 |
수학|강학지 | 남계서원 -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남계서원길 8-11[원평리 586-1] |
사당|배향지 | 화산서원 -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수동내동길 7-12[화산리 1248-1]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나주 |
대표 관직|경력 | 우승지 |
[정의]
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문신.
[가계]
임희무(林希茂)[1527~1577]의 자는 언실(彦實), 호는 남계(蘫溪)이다.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아버지는 참봉 임각(林珏)이다.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권시민(權時敏)[1464~1523]의 딸이다.
[활동 사항]
남계 임희무는 1527년(중종 22) 함양군 동쪽 서평촌[지금의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 서평]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영특하다는 소리를 듣고 자란 임희무는 1552년 26세의 나이로 개암(介庵) 강익(姜翼)[1523~1567]을 비롯한 지역 선비들과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1450~1504]을 배양할 남계서원(灆溪書院)의 창립에 함께하였다. 이후 아버지로부터 글을 배우던 임희무는 함양 대표 문인인 당곡(唐谷) 정희보(鄭希輔)[1488~1547]의 문하에 들어가 학문을 배웠다. 32세에는 노진(盧禛)[1518~1578]·이후백(李後白)[1520~1578]·강익(姜翼)[1523~1567]·오건(吳健)[1521~1574] 등과 함께 학문을 연마하였고, 남명(南冥) 조식(曺植)[1501~1572]을 스승으로 모셨다. 1558년 별시에 급제하였으나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예를 다한 뒤 벼슬길에 올랐다. 이후 성균관학유, 홍문과정자, 사헌부지평, 정언, 작령 등을 지냈고, 금산·순창·밀양·능주·울산의 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임희무는 마지막 벼슬인 능주군수에서 물러난 후 함양군의 향리로 내려와 오두막집을 지어 학문을 연마하고 후학들을 지도하다가 1577년(선조 10) 51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임희무 저서로는『남계집(蘫溪集)』 4권 2책이 있다.
[상훈과 추모]
1915년 임희무의 후손들이 임희무를 기리기 위해 임희무가 함양군에 지은 오두막집 터[함양군 수동면]에 망북정(望北亭)을 건립하였다. 1999년 봄에는 회암(會岩) 임종인(林宗仁)과 함께 화산서원(華山書院)에 위패를 모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