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계집』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200573
한자 灆溪集
영어공식명칭 Namgyejip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상남도 함양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영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917년연표보기 - 『남계집』 간행
소장처 국립중앙도서관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대로 201[반포동 산60-1]
성격 문집
저자 임희무
편자 임종간|임종한(林鍾漢)|임종한(林鍾瀚)
간행자 임병삼|임기택
권책 2권 1책
행자 10행 18자
규격 28.5×19.2㎝[전체 크기]|19.0×16.4㎝[반곽]
어미 내향이엽화문어미
권수제 남계집
판심제 남계집

[정의]

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군 서평촌 출신인 남계 임희무의 문집.

[저자]

임희무(林希茂)[1527~1577]의 자는 언실(彦實), 호는 남계이다. 본관은 나주(羅州)다. 경상남도 함양군 서평촌(黍坪村)[지금의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 서평] 출신이다. 남명(南冥) 조식(曺植)[1501~1572]을 사사하고, 개암(介庵) 강익(姜翼)[1523~1567] 등과 교유하였다. 1552년에 강익, 박승원(朴承元), 노관(盧祼), 정복현(鄭復顯)[1521~1591] 등과 함께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1450~1504]을 배향하는 남계서원을 창립하였다.

[편찬/간행 경위]

임희무의 문장은 임진왜란의 병화로 없어지고 후손들에게 전해지던 유문을 수습하여 친족 임경창(林慶昌)[1625~?], 임병효(林炳孝), 임사과(林司果), 조카 임인규(林仁圭)가 책을 간행하기로 모의하였다. 이에 임종간(林鍾簳)·임종한(林鍾漢)·임종한(林鍾瀚) 등이 그 일을 담당하였다. 1888년 송병선(宋秉璿)[1836~1905]이 서문을 짓고 1889년 후손 임병홍(林炳洪)·임종학(林鍾學)이 발문을 지었다. 그런데 서말에 1917년 망북정(望北亭) 아래 의암정사(義庵精舍)에서 간행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1901년 우정규(禹禎圭)[1718~?]의 서문을 받고 1917년 후손 임세규(林世圭)[?~1921]가 다시 발문을 지어 임병삼(林炳三), 임기택(林璣澤)과 함께 간행한 것으로 보인다.

[형태/서지]

2권 1책의 목활자본으로, 사주쌍변(四周雙邊)이다. 전체 크기는 28.5×19.2㎝, 반곽은 19.0×16.4㎝이다. 계선(界線)이 있다. 10행 18자이고, 주(註)는 쌍행(雙行)이며, 내향이엽화문어미(內向二葉花紋魚尾)가 있다. 표제, 권수제, 판심제 모두 ‘남계집(蘫溪集)’이다.

[구성/내용]

2권 1책에 부록 2권이 포함되어 있다. 권1에는 시 11제가 있다. 권2에는 「제남명조선생문(祭南冥曹先生文)」, 「제덕계오공문(祭德溪吳公文)」, 「양열공백야장공행장(襄烈公柏冶張公行狀)」이 있다. 부록 권1에는 제현(諸賢)[여러 젊잖은 분들]의 창수시(唱酬詩)[서로 주고받으면서 지은 시]가 있다. 옥계(玉溪) 노진(盧禛)[1518~1578], 남명 조식, 갈천(葛川) 임훈(林薰)[1500~1584], 죽암(竹巖) 안전(安瑑), 덕계(德溪) 오건(吳健)[1521~1574], 입재(立齋) 노흠(盧欽)[1527~1602], 임당(林塘) 배신침(裵愼忱)의 시다. 부록 권2에는 만장(挽章), 노진이 지은 제문, 행장, 묘갈명, 「망북정기(望北亭記)」, 「망북대비명(望北臺碑銘)」, 「진주도회소유통(晉州道會所儒通)」, 「금산경양서원발문(金山鏡陽書院發文)」, 「거창향교발문」, 「안의향교발문」, 「산청서계서원발문(山淸西溪書院發文)」, 「함양읍발문」이 있다.

[의의와 평가]

16세기 함양을 중심으로 경상우도 지역에서 활동한 유림의 동향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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