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05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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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春睡堂集 |
영어공식명칭 | Chunsudangjip |
이칭/별칭 | 『춘수당문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영숙 |
[정의]
조선 시대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정수민의 시문집.
[저자]
정수민(鄭秀民)[1577~1658]의 자는 자빈(子賓), 호는 춘수당(春睡堂)·동리(東里)이다. 본관은 하동(河東)이다. 정여창(鄭汝昌)[1450~1504]의 증손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 개평마을에서 태어났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하에서 배웠다. 성품이 공손하고 행동거지가 단정하고 겸손하여 소일두(小一蠹)라고 불렸다. 오장(吳長)[1565~1617], 정홍서(鄭弘緖)[1571~1648] 등과 종유(從遊)[학식이나 덕행이 높은 사람을 좇아 함께 지냄]하였다. 『문헌공실기』를 간행하였으며, 경상남도 함양군의 명현·풍속 등을 수록한 『천령지』를 편집하고, 『한강서간첩(寒岡書簡帖)』과 『제현간첩(諸賢簡帖)』을 편찬하였다.
[편찬/간행 경위]
원집의 서문은 1888년 8월 송병선(宋秉璿)[1836~1905]이 지었다. 방계인 11세손 정직현(鄭直鉉)의 발문, 7세손 정덕의(鄭德誼)와 정덕현(鄭德玄)의 발문이 있다. 정덕의와 정덕현이 간행을 주도하고 조카들이 나서서 도왔다. 정동휘(鄭東徽)가 주손(冑孫)[적자의 맏이로 내려오는 후손]의 인사가 빠져서는 안 된다 하여 정직현에게 발문을 부탁하였다. 속집의 서문은 1888년 9월 9세손 정환주(鄭煥周)[1833~1899], 발문은 8세손 정동휘가 각각 지었다. 원집에서 빠진 시문을 수습하여 정덕현의 주선으로 정동휘가 간행을 담당하였다.
[형태/서지]
상·하 2책으로 나뉘어 있다. 상은 4권 1책, 하는 1권 1책의 고활자본이다. 전체 크기는 31.1×21.0㎝, 반곽(半郭)은 22.9×16.6㎝이다. 사주단변(四周單邊)에 주석은 쌍행(雙行)이며, 10행 22자이다. 내향이엽화문어미(內向二葉花紋魚尾)가 있다.
[구성/내용]
상책에는 권1에 부(賦)·시·만시(輓詩)·서(書), 권2에 제문·발(跋)이 있다. 권3에는 전(傳)·잡저와 부록으로 행록, 권4에 묘갈명·제문·「도곡사춘추향축문(道谷祠春秋享祝文)」·발문이 있다. 하책에는 시 176수, 애사 4편, 제문, 「화개현구장도(花開縣舊莊圖)」, 발문이 있다. 이 가운데 권3의 잡저편에 실린 「서창만록(書窓謾錄)」은 역대 인물의 촌평이나 일화를 적은 것으로, 간인(奸人)[간사한 사람]·명상(名相)[이름난 재상. 즉 명재상] 등의 학행·간계·의기(義氣)를 촌평하였다. 대상은 중국 학자까지 삼았다.
[의의와 평가]
시·부·애사·전·만록 등 다양한 양식의 문학작품이 실려 있는 문집으로, 17세기 경상남도 함양군 지역 유림의 한문학 위상을 가늠할 수 있는 시문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