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11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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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O Ilseong |
분야 | 문화·교육/체육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백승엽 |
[정의]
경상남도 함안군 출신의 축구 선수이자 지도자.
[활동 사항]
오일성은 1942년 부산에서 개최된 제18회 조선 신궁 경기 대회에 참석하기 위한 경상남도 예선전에 함안 대표로서 팀을 이끌고 출전하여 우승하였다. 이 후 서울에서 열린 본선 경기에 출전하였으나 황해도 대표팀에 2 대 1로 패하였다. 하지만 오일성의 경기력과 불굴의 투지에 매료된 수많은 관중이 그에게 찬사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특히 이 대회 동안 그의 경기를 지켜 본 김용식[1948년 런던 올림픽 축구 대표 선수]이 오일성에게 서울에서 축구를 하자고 제안하였다. 처음 오일성은 함안을 떠날 수 없다고 하였지만 곧 김용식의 권유를 받아들여 경성팀에서 축구 선수 생활을 하다 고향인 함안으로 돌아왔다. 1945년 10월 오일성은 제1회 영남 3지역[부산, 마산, 진주] 축구 대항전에 마산을 대표하는 선수로 출전하였고, 이 대회에서도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였다고 전해진다.
오일성은 1945년 일제가 패망하고 광복이 되자 함안군 체육회를 조직하였고, 이를 토대로 함안에 축구를 보급하고 지역의 축구를 발전시키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하였다. 특히 함안 지역의 면 단위마다 청년들을 규합하여 축구를 하도록 하였으며 청소년 축구단을 만들어 지도하였다. 또한 1946년 함안면, 가야면[현 가야읍], 군북면, 칠원면[현 칠원읍] 등 면 대항 축구 대회를 개최하고, 이후 축구의 저변 확대와 내실을 다지기 위하여 십수 년 동안 심혈을 기울였다.
1947년에는 가야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축구를 지도하여 그해 개최된 경남 초등학교 축구 대회에 참가하여 우승하였다. 1953년에는 함안 중학교 선수들을 지도하여 진주에서 개최된 진주 개천 예술제 전국 중학교 대항 축구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였다. 그리고 함안군, 의령군, 합천군, 창녕군 등 4군 친선 축구 대회 창설에 앞장서 함안군과 인접한 군 지역들과 축구를 통하여 친선을 도모하고자 노력하였다.
오일성은 또한 지역민이 마음 놓고 축구를 할 수 있도록 공설 운동장을 설립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리하여 함안군 출신의 효성 물산 회장 조홍제를 방문하여 공설 운동장의 필요성을 설명하였고, 조홍제 회장의 도움을 받아서 가야읍 말산리 신동에 함안군 공설 운동장을 설립하는 데 공헌하였다. 이와 같이 오일성은 한평생을 함안군 축구 발전과 번영에 힘써 함안군 축구의 밑거름이 되었다. 이에 많은 사람이 함안군의 축구 발전을 위하여 노력한 오일성의 공로를 인정하고 추모하기 위하여 기념비 건립을 세우고자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