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1084
한자 釜峰 敎會
영어공식명칭 Bubong Presbyterian Church
분야 종교/기독교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부봉3길 1-1[부봉리 548]
시대 근대/개항기,현대/현대
집필자 조규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06년연표보기 - 부봉리 교회로 설립
개칭 시기/일시 미상 - 부봉리 교회에서 부봉 교회로 개칭
최초 설립지 부봉리 교회 -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문암리
주소 변경 이력 부봉리 교회 -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부봉리 695
현 소재지 부봉 교회 -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부봉3길 1-1[부봉리 548]지도보기
성격 교회
설립자 박희준의 가족
전화 055-583-0293

[정의]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부봉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소속 교회.

[설립 목적]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 지역의 영혼 구원과 봉사를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변천]

부봉 교회는 개항기 최초의 선교사 왕길지(王吉志)[G. Engel, 1864~1939]와 조사 정덕생(鄭德生)의 전도로 박희준의 가족과 신병에서 치료된 이수목의 가족에 의해 문암 마을에서 부봉리 교회로 시작되었다. 부봉리 교회의 설립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진다. '교회의 최초 설립 구성원이었던 이수목이 새벽에 마을 뒷산인 자양산 봉우리에서 빛이 나타나 십자가 형상으로 변하면서 마을 논으로 꽂히는 꿈을 꾸었다. 이 꿈을 당시 함께 개종했던 큰 형수와 작은 형수에게 말하자, 그들도 똑같은 꿈을 꾸고 고민하던 중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부봉리에 교회를 세우기로 하고 교회당을 건축하였다. 이후 이수목이 신병을 얻어 신음하던 중 박수였던 형이 얻어온 쪽 복음서를 읽으면서 치료가 되자, 온 가족이 개종하게 되었다'는 일화다.

이수목과 이현속 부자는 교회의 영수로 일하던 중 만세 운동에 참여하고, 일제 신사 참배를 반대하여 옥살이를 하였다. 이현속은 마을의 병든 환자를 진주 배돈 병원까지 손수레로 옮겨 치료할 수 있게 했던 일화가 전해진다. 이현속은 진주 배돈 병원에서 전도사로 시무하며 환자들을 돌보았다. 이후 진주를 중심으로 함안, 함양, 하동 등지에서 신앙의 절개를 지키고 일왕 숭배를 거절할 것을 호소하며 민족정신을 고취하다 1940년 8월 19일 일경에 체포되어 사천 및 부산 북부 경찰서 등에서 모진 고문에 시달렸다. 얼마 후에는 평양 형무소로 이송 수감되었고, 광복을 세 달 앞둔 1945년 5월 순교하게 되었다.

부봉리 교회는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문암리에서 산인면 부봉리 695번지로 이전했다가 다시 산인면 부봉3길 1-1의 현 위치로 이전했고, 명칭도 부봉 교회로 변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이수목의 아들 이현속은 경상남도 하동 주변 지역의 하계 교회, 악양 교회, 적양 교회, 북천 교회 등을 순회하면서 사역하다가 산청군에서 덕산 교회와 생초 교회를 개척하였다. 정확한 기간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한 때 부봉 교회는 주민들을 위한 학교도 운영하며 문맹 퇴치 활동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황]

2016년 현재 부봉 교회는 담임 목사 1명, 장로 1명 외 20명 남짓한 성도들로 구성되어 있다. 농촌 교회의 특징상 노인층 인구가 대부분이지만 도시 교회들과 협력하여 미용, 의료 등의 봉사를 통해 주민들과 소통하는 중이다. 그리고 옛 부봉 교회를 유지 보수하여 옛 선조들의 신앙, 사랑, 희생정신을 기리고 있다.

[의의와 평가]

부봉 교회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지역에서 복음 전파,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환자 돌봄, 그리고 일제 강점기의 신앙에 입각한 민족 사랑 등을 실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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