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10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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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坪川 書院 |
영어공식명칭 | Pyeongcheon Private Confucian Academy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명관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고은영 |
[정의]
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명관리에 있었던 서원.
[개설]
평천 서원(坪川書院)은 조선 전기의 박희삼(朴希參)[1486-1570]을 주벽(主壁)으로, 두 아들인 박제현(朴齊賢)[1521-1575], 박제인(朴齊仁)[1536-1618]을 배향한 서원이다. 박희삼의 자는 노경(魯卿)이고, 호는 모암(茅菴)이며, 본관은 경주이다. 경상남도 함안군 평광리(平廣里)[현, 함안군 군북면 명관리]에서 출생하였다. 1547년(명종 2)에 천거되어 덕릉 참봉(德陵參奉)과 건원릉 참봉(健元陵參奉)을 지냈는데, 어버이 봉양을 이유로 벼슬에서 물러났다. 부모상을 당하여 6년간 시묘 살이를 하였는데, 정구(鄭逑)가 박희삼의 효성을 칭찬하였다. 향시(鄕試)에 7번, 동광시(東堂試)에 2번 나갔으나, 모두 실패하고는 학문에 전념하였다. 남명(南冥)조식(曺植)[1501~1572]과 가장 친하였는데, 두 아들인 박제현, 박제인을 조식에게 배우게 하였다. 사림의 공의(公議)로 평천 서원에 제향하였다.
박제현은 경상남도 함안군 평광리에서 태어나 일생을 이곳에서 마쳤다. 함안에 송암정사(松嵒精舍)를 지어 명사들과 교유하고, 동생인 박제인과 소위 이정(二程)으로 불리어졌다. 훗날 평천 서원에 배향되었다. 박제인은 남명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02년(선조 35) 왕자사부(王子師傅)로 부름을 받아 의창군(義昌君)이광(李珖)[1589-1645]을 가르쳤다.
[설립 목적]
평천 서원은 박희삼과 두 아들 박제현, 박제인을 배향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변천]
1868년(고종 5)에 흥선 대원군(興宣大院君)의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 1915년 평천 서원 유허비(坪川書院遺墟碑)가 건립되었다.
[현황]
평천 서원 유허비는 1915년 중건된 경주 박씨 재실인 추모재(追慕齋)의 맞은편에 건립되었다. 경주 박씨 재실의 내부에는 “평천 서원 유허비 건립 고유 집사(坪川書院遺墟碑建立告由執事)”라는 헌납한 내역이 적힌 종이가 붙어 있다. 추모재는 팔작지붕 건물[정면 4칸, 측면 2칸]이다. 정면에는 경앙문(敬仰門)이라는 현판이 달린 솟을대문이 있고, 대문의 좌측으로 우진각 지붕[3칸]의 관리소가 있다. 간살 잡이는 우측 1칸을 대청으로 두고 좌측 3칸을 온돌방으로 사용하고 있다. 최근 보수하여 전면과 좌·우측에 유리창 미닫이문을 설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