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1073
한자 杜陵 書院
영어공식명칭 Dureung Private Confucian Academy
분야 종교/유교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여항면 두곡길 147[외암리 304-1]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고은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832년연표보기 - 두릉 서원 창건
해체 시기/일시 1868년연표보기 - 두릉 서원 훼철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84년 - 두릉 서원 중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30년 - 두릉 서원 두릉 서당으로 중건
최초 설립지 두릉 서원 - 경상남도 함안군 여항면 두곡길 147[외암리 304-1]
현 소재지 두릉 서당 - 경상남도 함안군 여항면 두곡길 147[외암리 304-1]지도보기
성격 교육 기관|서원
설립자 순흥 안씨

[정의]

경상남도 함안군 여항면 외암리에 있는 서원.

[개설]

두릉 서원(杜陵書院)은 안민(安慜)[1539~1592], 안희(安憙)[1551~1613], 안신갑(安信甲)[1564~1597]을 배향하는 서원이며, 두릉(杜陵)은 현재의 음·양촌과 내곡을 일컬어 부르던 옛 지명이다. 안민은 선조(宣祖) 대에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로 재직하였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우고 후에 3품관에 올랐다. 안희는 1585년(선조 18) 문과에 급제하였고, 임진왜란 때 김해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1824년(순조 24)과 1832년(순조 32)에 지방 사림에 의해 경상북도 순흥의 용연사(龍淵祠)와 경상남도 함안의 두릉사(杜陵祠)에 각각 봉향되었다. 안신갑은 임진왜란 때 아버지 안민을 따라 의병을 일으켰으며, 정유재란 때 경상남도 산청에서 분전하다 강물에 투신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에 선조는 교서를 내려 판결사(判決事)에 증직하였으며 정려(旌閭)하였다.

[설립 목적]

두릉 서원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운 안민, 안희, 안신갑을 배향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변천]

처음에는 경상북도 순흥[현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의 용연 서원(龍淵書院)에서 안민을 향사하고 있었으나 1832년에 묘소가 있는 두릉에 사원(祠院)을 지어 옮겨 향사하게 되었다. 1868년(고종 5)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30년 후손들이 그 옛 터에 서당으로 중건하였다. 현대의 건물은 1984년 후손들이 다시 세운 것이다. 후손인 안용호(安龍鎬)가 「두릉 서당 중건기(杜陵書堂重建記)」를 지어 그 면모를 짐작할 수 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매년 10월 15일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순흥 안씨(順興安氏) 직장공파에서 관리하고 있다.

[현황]

현재의 건물은 1984년에 후손들이 중건한 것으로 서원의 기풍에 따라 향사를 하고 있다.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양식이다. 대문 앞에 있는 안성흥 혜휼 군졸비(安聖興惠恤軍卒碑)는 원래 함안읍에 있던 것을 6·25 전쟁 이후에 후손들이 경상남도 함안군 여항면 두곡길 147[외암리 304-1] 현재의 장소로 옮겼다 한다. 죽계공 종가에 보관되어 전해지던 전적이 두릉 서당으로 옮겨져 관리되던 중, 한국학 중앙 연구원 고문서 연구실에서 1995년에 정리하여 ‘『고문서 집성(古文書集成)』81-함안 두릉 순흥 안씨 편(咸安杜陵順興安氏篇)-’으로 출판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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