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08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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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黃英煥 |
영어공식명칭 | Hwang Yeonghwa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용산리 |
시대 |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신은제 |
[정의]
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황영환(黃英煥)[1899~?]은 1899년 11월 28일 함안군 칠원읍 용산리에서 태어났다. 아들로 황의규(黃議奎)·황효규(黃孝奎)·황무규(黃武奎)가 있고, 손자는 황선욱(黃善昱)·황선은(黃善垠)·황선정(黃善政)·황선영(黃善暎)을 두었다. 칠원면구성리 시장 만세 운동은 기독교 장로이자 지방 유지인 손종일(孫鐘一)과 지역 각 집안의 대표격인 황영환·엄주신(嚴柱信) 등이 모의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당시 칠원면 장날인 3월 23일 만세 운동을 결의하고, 칠원면 용산리에 위치한 가장정(佳藏亭)에서 독립 선언서와 태극기를 준비하였다. 독립 선언서와 태극기 제작에 필요한 종이는 경상남도 의령군 신반면에서 다량 구입하였고, 태극기 제작에 참여한 이들을 위하여 황연환·윤형규 등이 식사를 준비하여 운반하였다.
3월 24일 오후 4시경 장터에서 태극기를 나누어 준 뒤 독립 선언식을 거행하였다. 손종일이 독립 선언서를 낭독한 뒤 태극기를 앞세우며 행진을 시작하였다. 시위대는 칠원면 시가지를 가로질러 경찰 주재소로 향하였다. 3월 19일과 20일 함안면과 군북면에서 거센 시위대에 직면한 경찰과 마산에서 파견된 군인들은 총검으로 위협하며 시위 주동자들을 체포하였는데, 이때 황영환도 체포되었다. 하지만 칠원 지역의 시위 불길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4월 3일 손종일 등은 2차 시위를 벌여 더욱 격렬하게 독립 만세를 외쳤으나 이 역시 일본 군경이 탄압하여 좌절되었다. 황영환은 칠원면구성리 시장 만세 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체포되었고, 1919년 5월 8일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 형을 선고 받았다.
[상훈과 추모]
황영환은 2010년 독립운동에 참여한 공이 인정되어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