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08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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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嚴柱信 |
영어공식명칭 | Eom Jusi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구성리 728 |
시대 |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고은영 |
[정의]
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서울에서 벌어진 3·1 운동 소식을 듣고 손종일(孫鍾一)·이원식·황대수(黃大秀) 등이 모의하여 3월 23일 칠원 장날 거사를 결정하였다. 당일 오후 4시경 장터에 결집한 1,000여 군중은 칠원 시가지를 행진하고 경찰 주재소를 포위하기도 하였다. 이후 엄주신·손종일 등의 주동으로 4월 3일 오후 3시에 2차 시위가 일어났다. 800여 명이 시위에 참여해 경찰 주재소를 포위하고 구속자의 석방을 요구하였으나 출동한 진해 경중 포병 대대의 군인에 의해 사람들이 체포되면서 끝이 났다.
[가계]
아들로 엄영환(嚴永煥)·엄문섭(嚴文燮)·엄무섭(嚴武燮)이 있고, 손자로는 엄동규(嚴東奎)·엄영규(嚴英奎)가 있다.
[활동 사항]
엄주신(嚴柱信)[1890~1973]은 1890년 4월 15일 함안군 칠원읍 구성리에서 태어났다. 성리학으로는 나라를 되찾고 백성을 구휼하는 것이 미흡하다고 판단하여 한의학에 정진하였다. 한의사로 성장하여 헐벗고 굶주리는 조선인의 구휼에 앞장섰지만, 국권을 회복하지 않는 주민 구휼은 모두 헛된 일이라 생각하여 나라를 찾기 위하여 우국지사들과 교류하였다.
서울 3·1 운동 소식을 듣고 1919년 3월 23일 함안군 칠원에서 손종일, 황대수, 주영호(周泳鎬), 박경천(朴擎天), 윤형규(尹兄珪) 등과 독립 만세 시위 운동을 계획하고 칠원 장터에서 칠원면구성리 시장 만세 운동을 벌였다. 무장한 일본 경찰들이 황영환(黃英煥), 신영수 등을 체포하고 총으로 군중을 위협하여 시위는 해산하였다. 4월 3일 엄주신과 손종일 등이 주동하여 칠원면구성리 시장 만세 운동 2차 시위를 벌였다. 이때 엄주신은 윤형규 등과 함께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8개월 형을 선고 받아 대구 감옥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형기를 마친 후 함안군 칠서면 무릉리에서 한의사로 봉사하였는데, 경찰의 탄압이 극심하여 1940년 함안군 칠원으로 이사하여 약국을 경영하다가 1973년 8월 28일 83세로 사망하였다.
[묘소]
엄주신은 국립 대전 현충원 애국 지사 묘역 제2-1015에 안장되었다.
[상훈과 추모]
1992년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