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08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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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韓灌烈 |
영어공식명칭 | Han Gwanryeol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
시대 |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신은제 |
[정의]
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한관렬(韓灌烈)[1892~1950]은 1892년 12월 18일 함안군 함안면 봉성리에서 태어났다. 아들로 한종호(韓鍾鎬)가 있다. 한관렬은 고종의 장례에 참배하기 위해 이찬영(李讚榮)·한종순(韓鍾淳)·조병흠(趙丙欽)·박건병(朴建秉)·강기수(姜琪秀) 등과 함께 상경하였다. 서울에서 독립 선언식과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고 귀향하여 함안에서 독립 만세 운동을 기획하였다. 함안 장날인 3월 19일 거사일에 비봉산에서 고천제를 지낸 후 태평루에서 독립 선언식을 거행하였다. 이후 안종호(安宗鎬)와 경찰 주재서로 가서 군청을 향해 시위행진을 전개하였다. 이를 저지하기 위하여 출동한 마산 경찰 서장 기타무라[北村]와 현지 경찰들이 무력을 행사하려 하자, 시위 군중은 격노하여 경찰 주재소로 들어가 공문서를 파기하고 건물을 파괴하였다.
시위 군중은 폐쇄한 군청 문을 부수고 청사 안으로 들어가서 군수 민인호(閔麟鎬)를 붙잡아 제복과 모자를 벗기고 독립 만세를 외치라고 요구하며 구타하였다. 사기가 충천한 시위 군중은 등기소·우편소·일본인 소학교를 시위행진하며 습격하여 건물을 파괴하였다. 오후 5시 40분경, 전화가 불통되자 비상 사태가 돌발한 것으로 짐작하고 출동한 마산 중포병 대대 병력 16명이 함안에 도착하여 현지 경찰과 합세하여 총검을 휘두르며 주동자를 검거하기 시작하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한관렬은 이찬영·박노일(朴魯一) 등과 피신하여 위기를 모면하려 하였으나 결국 체포되었다. 1921년 8월 16일 부산 지방 법원 마산 지청에서 소요 및 출판법 위반 혐의로 4년 형을 선고 받아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한관렬은 1983년 대통령 표창, 1990년 건국 훈장 애족장을 서훈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