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08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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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張鍾植 |
영어공식명칭 | Jang Jongsik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강명리 |
시대 |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노익환 |
[정의]
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장종식(張鍾植)[1869~1949]은 함안군 함안면 강명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9일 함안읍 만세 운동에 참가하였다. 함안 지역 인사 한학 교사인 조한휘(趙漢輝)와 이찬영(李讚榮) 등은 고종의 장례식에 참여하기 위해 상경하여 3·1 운동을 경험하였다. 이들은 독립 선언문을 들고 함안으로 돌아와서 이희석(李喜錫), 한종순(韓鍾淳) 등과 함께 3월 19일 함안읍 만세 운동을 모의하였다.
3월 19일 오후 1시경 비봉산에서 고천제(告天祭)를 올리고, 이희석이 태평루에서 독립 선언문을 낭독한 뒤 3,000여 명의 군중이 경찰 주재소와 군청으로 시위행진을 하였다. 장종식은 시위 행렬의 선두에서 시위를 주도하였다. 이때 이를 저지하기 위하여 출동한 마산 경찰 서장 기타무라[北村]와 현지 경찰들이 무력을 행사하려 하자, 격노한 시위 군중은 도끼와 몽둥이, 돌 등을 들고 경찰 주재소로 들어가 공문서를 파기하고 건물을 파괴하였다. 이어 시위 군중은 폐쇄해 놓은 군청 문을 부수고 청사 안으로 들어가서 군수 민인호(閔麟鎬)와 경찰 서장을 붙잡아 제복과 모자를 벗기고 독립 만세를 외치라고 요구하였고, 이에 불응하자 그들을 구타하였다. 그리고 사기가 충천한 시위 군중은 등기소, 우편소, 일본인 소학교를 차례로 시위행진하며 건물을 파괴하였다.
장종식은 만세 시위를 전개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등기소 기물을 파손한 죄로 5월 2일 부산 지방 법원 마산 지청에서 징역 1년 형을 선고 받았다. 장종식의 아들은 장병대(張炳大), 장병백(張炳伯), 장병율(張炳律), 장병봉(張炳鳳), 장병조(張炳祖)이고, 손자는 장홍기(張洪基), 장행기(張行基), 장상기(張相基), 장현기(張炫基), 장정기(張貞基), 장성기(張性基), 장문기(張文基)이다.
[묘소]
[상훈과 추모]
1990년 건국 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