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07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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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學來 |
영어공식명칭 | Jo Hakrae |
이칭/별칭 | 순칙(舜則),중암(中巖)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중암리 안도 마을 |
시대 |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구진성 |
[정의]
근대 함안 출신의 학자.
[가계]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순칙(舜則), 호는 중암(中巖). 조선단종(端宗) 때 생육신의 한 사람인 조려(趙旅)와 정유재란 때 황석 산성에서 순절한 조종도(趙宗道)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조창제(趙昌濟)이고, 어머니는 문화 유씨(文化柳氏)와 나주 나씨(羅州羅氏)이다. 친아버지는 조강제(趙綱濟)이고 친어머니는 인천 이씨(仁川李氏)이다.
[활동 사항]
조학래(趙學來)[1899~1964]는 함안군 안도[현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중암리 안도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종형인 화헌(和軒)조정래(趙正來)에게, 조금 자라서는 친족인 조정규(趙貞奎)에게 배웠다. 같은 고을에 살던 이훈호가 조학래의 글을 보고 크게 칭찬한 일도 있었다. 조병규(趙昺奎)와 조석제(趙錫濟)가 태산재(台山齋)에서 강학하던 곳에 찾아가 동참하였다. 이때 안상정(安商正), 이수행(李洙杏), 조열제(趙說濟) 등 인근의 인물들과 사귀었다. 향교의 명륜당이 난리 중에 불에 탔는데, 이때 전교를 맡아 재건하였다. 덕암 서원이 폐허가 된 지 오래되었는데, 비석을 세워 그 터를 표시하였다. 조정래의 유고(遺稿)도 수습하여 간행하였다. 집안 살림이 어려워지자 상업에 종사하기도 하였다.
[학문과 저술]
저서로 『중암 유고(中巖遺稿)』가 있는데, 1968년 조카 조쾌현이 주도하여 간행하였다.
[묘소]
묘는 경상남도 함안군의 남산 기슭 유좌 언덕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