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07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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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映奎 |
영어공식명칭 | Jo Yeonggyu |
이칭/별칭 | 영오(永五),임파(林坡)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운곡리 |
시대 |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구진성 |
[정의]
근대 함안 출신의 학자.
[가계]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영오(永五), 호는 임파(林坡). 조선 전기 조려(趙旅)의 15세손이고, 조영도(趙詠道)의 10세손이다. 아버지는 조성숙(趙性璹)이고, 어머니는 정광덕(鄭光悳)의 딸 해주 정씨(海州鄭氏)이다. 부인은 노종흠(盧琮欽)의 딸 장연 노씨(長淵盧氏)이다. 아들은 조용진(趙鏞珍), 조용석(趙鏞碩), 조용갑(趙鏞甲)이고, 딸 두 명은 성락정(成樂政), 노장한(盧章漢)에게 시집갔다.
[활동 사항]
조영규(趙映奎)[1858~1933]는 함안군 운곡[현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운곡리]에서 태어났다. 1901년(고종 38) 벼슬길에 올라 헌릉 참봉이 되었고 1902년 6품직에 올랐다. 1918년 고종(高宗)의 상과 1926년 순종(純宗)의 상에는 예를 다하였다. 일전에 아버지가 운곡에 서당을 설치하고 주자(朱子)를 봉안하려는 뜻을 품었으나 실현하지 못하였다. 조영규가 그 뜻을 이어 계를 모으고 매년 9월 석전제(釋奠祭)의 예를 올리고, 유능한 인물을 초빙하여 강회를 열었다.
[학문과 저술]
조영규는 학문의 필요성을 생도들에게 알리고자 「위학설시제생(爲學說示諸生)」이라는 글을 쓰기도 하였다. 그 대략은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반드시 고인이 이미 성취시킨 법을 보고 고인이 이미 행한 자취를 따라 하고자 하여, 배워서 모으고 물어서 분별하여 기질을 교정하고 몸과 마음을 검속하여 부지런히 쉬지 않고 항상 마음에 둔다면 그 지극한 경지에 이르러서는 범인도 성인이 될 수도 있으며, 어리석은 자도 뛰어난 지혜를 갖출 것이다.” 저서로 8권 2책의 『임파집(林坡集)』이 있다.
[묘소]
묘는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운곡리자양 산록 임파곡 곤좌 언덕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