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0158
한자 月村里
영어공식명칭 Wolchon-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월촌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미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 함안군 군북면 월촌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80년 5월 22일 - 함안군 군북면 월촌 출장소 설치
변천 시기/일시 1999년 1월 15일 - 함안군 군북면 월촌 출장소 폐지
변천 시기/일시 2003년 2월 - 함안군 군북면 월촌 출장소를 정보화 센터로 개축
성격 법정리
가구수 501가구
인구[남/여] 1,070명[남 552명/여 518명]

[정의]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에 있는 법정리.

[명칭 유래]

월촌(月村)은 남강(南江)을 사이에 두고 의령군과 경계하는 곳으로 처음에는 월라촌(月羅村)이라고 하였다. 모양이 마치 반월(半月)처럼 생겼기 때문에 붙여진 지명이라 한다. 월촌 본동 뒤편의 구릉을 대산(大山)이라고 부른다. 대산의 형상이 방어산(防禦山)에서 보면 금송아지가 금 말뚝에 매어져 있는 모습이라고 한다. 조그마한 구릉인데도 대산이라고 불린 것은 방어산의 정기가 와룡정(臥龍亭)에 와서 끊겼다가 다시 이은 산이기 때문이다. 옛날 이곳은 대나무 밭이었고 돌림병으로 죽은 자나 굶어 죽은 아이들을 매장한 곳이라 한다. 또 옛날 토기 조각이 자주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공동묘지[고려장 터]로 추측된다.

[형성 및 변천]

월촌리(月村里)가 속한 지역은 1914년 부·군·면 통폐합 시 군북면에 속하게 되었다. 1980년 5월 22일 군북면 월촌 출장소가 설치되었다. 이후 민원 수요의 감소로 1999년 1월 15일 폐지되었다. 2003년 2월 월촌 출장소가 정보화 센터로 개축되어 주민 정보화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자연환경]

월촌리군북면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하며 서쪽과 북쪽으로는 남강을 경계로 의령군과 접하고 있고 동쪽으로는 석교천(石橋川)을 경계로 함안군 법수면 강주리와 접하고 있다. 월촌리남강의 보호 사변에 발달한 촌락으로 남강의 퇴적물이 쌓여 비옥한 평야가 발달해 있는 곳이다. 월촌리의 남쪽으로 낮은 구릉지가 발달해 있고 북쪽으로 남강의 범람으로 의해 형성된 평야가 있다. 월촌리의 정암 마을은 남강의 자연 제방에 들어서 있으며 월촌 마을도 남강의 수해를 피할 수 있는 구릉지 비탈면에 있다.

[현황]

2014년 12월 말 현재, 총 501가구에 1,070명[남 552명/여 518명]의 주민이 살고 있어 군북면에서 두 번째로 인구가 많다. 월촌리는 월촌동(月村洞)·의봉동(儀鳳洞)·정암동(鼎岩洞)의 3개 행정리로 이루어져 있다. 월촌리의 특산물은 수박이며, 뜬늪이라 불리는 평야의 대규모 비닐하우스 단지 내에서 생산되고 있다. 월촌리에도 창원시 공업 지역의 이심 현상(離心現狀)으로 많은 공장들이 이전하여 도시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월촌 일반 산업 단지가 개발되고 있고 함안 일반 산업 단지월촌리로 확장되어 조성되고 있다.

월촌리 월촌 정류소 맞은편에 어사비(御使碑)라는 비석이 하나 있는데, 이는 조선영조(英祖) 때 암행어사(暗行御史) 박문수(朴文秀)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어사 박문수가 월촌 지방을 방문하여 월촌과 의령 간에 오래 전부터 있어 온 논쟁인 함안과 의령의 경계 구분을 지혜롭게 해결해 주었다. 함안과 의령의 경계는 남강의 지류(支流)에 속하는 하천을 경계로 나뉘어 있었는데 하천의 물길이 계속 변하였기 때문에 경계를 명확히 구분할 수 없어 논쟁이 되고 있었다. 박문수의 도움으로 이 오랜 논쟁이 해결되어 불화는 사라지고 두 지역은 사이좋은 이웃이 되었다고 한다.

[참고문헌]
  • 『함안 군지』(함안 군지 편찬 위원회, 1997)
  • 『2013~2014 군정 백서』(함안군, 2015)
  • 함안 군청(http://www.haman.go.kr)
  • 함안군 군북면(http://www.haman.go.kr/town/Gunbuk)
  • 함안군 통계 연보(http://stat.haman.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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