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새마을운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0560
한자 -運動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조종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창 시기/일시 1970년 4월 22일 - 새마을 가꾸기 운동 제창
성격 지역 사회 개발 운동

[정의]

1970년부터 전라북도 군산 지역을 포함하여 범 국민적으로 전개된 지역 사회 개발 운동.

[개설]

새마을운동은 근면·자조·협동의 기치 아래 생활 태도 혁신·환경 개선·소득 증대를 통해 낙후된 농촌을 근대화 시킨다는 취지로 1970년 4월 22일 박정희 대통령이 전국 지방 장관 회의에서 새마을 가꾸기 운동을 제창, 추진 방안이 마련됨으로써 전개된 정부 주도의 지역 사회 개발 운동이다.

[군산 지역의 새마을운동]

새마을운동에는 당시 여당인 공화당 조직이 깊숙이 개입하고 있었다. 또한, 새마을 지도자들은 공화당의 세포나 통일 주체 국민 회의 대의원들로 활용되었고, 농민 뿐만 아니라 수 많은 지방 공무원도 동원되었다. 당시 시·군·읍·면 단위 공무원들은 새마을 지도자들과 풀베기, 길 넓히는 일, 초가 지붕을 슬레이트로 바꾸는 일, 퇴비 만드는 일 등이 주요 일과였다.

군산시 공무원이었던 최영은 자신이 쓴 책에서 1976년 10월 22일부터 전주 공무원 연수원에서 받은 3주 동안의 새마을 교육은 병영 생활보다 더 고되게 느껴졌다고 회고한다. 새벽 나팔 소리에 일어나 침구를 개키고 운동장에 모여 인원 보고 및 국기 게양식을 하고, 구보와 국민 체조, 새마을 노래를 4절까지 반복해서 부르는 것으로 아침 조회가 끝났다는 것이다.

최영은 학과 시작 전 30분간의 명상은 박정희 대통령의 어록을 듣는 시간으로 매일 반복되는 명상은 경시된 사상으로 빠져 들게 하였고, 동료 직원들은 유신의 세뇌 시간이라며 불평이 많았다고 적고 있다. 이어 최영은 평가의 양면성은 있지만, 자신의 시각으로는 조국 근대화를 목표로 한 획일적인 집체 교육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수리 시설 확충·농경지 확장 등을 통한 식량 자급 기틀을 마련하는 성과도 거뒀다. 영농의 과학화, 농가의 부업 육성, 농산물 가격 보장, 새마을 금고 육성, 생산품 품질 개선과 생산성 향상, 근로자 후생 복지 제도 및 시설 확충 등에서도 발전을 가져왔다. 무엇보다 농촌을 단기간 내에 현대적으로 변화시킨 점이 특기할 성과라 할 것이다.

초기 새마을운동은 농민들의 자발성과 자조 정신이 무엇보다 강조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성과를 명분 삼아 권력이 개입하여 무허가 건물을 양산하는 등 강압적으로 시행된 측면이 있다. 농민은 잘 살아보려고 참여했지만, 발전 방향과 내용을 제시해 준 곳은 국가로, 농민이 자율적 주체였다고 보기 어려운 개발 운동이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