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8012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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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奉恩寺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기관 단체/사찰 |
지역 | 서울특별시 강남구 봉은사로 531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강호선 |
개칭 시기/일시 | 1499년 - 견성사에서 봉은사로 개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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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수|중창 시기/일시 | 1499년 - 봉은사 봉릉사찰로 중창 |
이전 시기/일시 | 1562년 - 봉은사 현재의 위치로 이전 |
중수|중창 시기/일시 | 1856년 - 봉은사 판전 신축 |
중수|중창 시기/일시 | 1941년 - 봉은사 선불당 등 중창 |
중수|중창 시기/일시 | 1975년 - 봉은사 삼층석탑, 석등 조성 |
중수|중창 시기/일시 | 1982년 - 봉은사 진여문, 대웅전 중창 |
중수|중창 시기/일시 | 1996년 - 봉은사 미륵대불 조성 |
최초 건립지 | 봉은사 - 현 선릉공원 |
주소 변경 이력 | 봉은사 -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73 |
주소 변경 이력 | 봉은사 - 서울특별시 강남구 봉은사로 531 |
현 소재지 | 봉은사 - 서울특별시 강남구 봉은사로 531[삼성동 73] |
성격 | 사찰 |
전화 | 02-3218-4800 |
홈페이지 | 봉은사(http://www.bongeunsa.org) |
[정의]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총본산 조계사 소속 사찰.
[건립 경위 및 변천]
「봉은사사적비명」이나 『봉은사본말사지』 등에 의하면 『삼국사기』 원성왕조의 기사에 근거하여 봉은사(奉恩寺)가 신라 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서술하였으나 이는 사료를 오독한 것에서 연유한 잘못된 인식이다. 봉은사에 대한 신뢰할 수 있는 기록은 조선 전기부터 등장하는데 이에 의하면 조선 성종(成宗)의 비인 정현 왕후(貞顯王后)가 성종이 죽은 뒤 성종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선릉(宣陵) 근처에 전부터 있던 견성사(見性寺)를 왕릉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옮겨 대대적으로 확장하고 이름을 봉은사로 바꾸었다고 한다. 견성사가 언제 봉은사로 바뀌었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에 의하면 1499년경 공사가 끝나고 이름을 봉은사로 바꾼 것으로 보인다. 이후 봉은사는 왕실 원찰이자 선릉의 조포사(造包寺)로서 왕실로부터 전답을 비롯한 경제적 후원을 받게 되었다.
한편, 봉은사가 전국 수사찰(首寺刹)의 위상을 갖게 된 것은 명종대 문정 왕후(文定王后)와 보우의 활동부터였다. 1550년(명종 5) 문정왕후(文定王后)에 의해 선교양종(禪敎兩宗)이 복립되면서 봉은사는 선종본사로, 봉선사(奉先寺)는 교종본사로 지정되었고, 1507년(중종 2) 완전히 폐지했던 승과를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의거해 다시 시행하도록 하였다. 1552년(명종 7) 봉은사에서는 보우(普雨)가 주도하는 선종승과가 시행되어 휴정을 비롯한 승과 합격자를 배출했는데, 이때 승과가 열렸던 봉은사 앞 너른 들을 승과평(僧科坪)이라 부른다. 1562년(명종 17) 9월 선릉 동쪽 기슭에 있던 옛 봉은사 터에 중종의 정릉(貞陵)이 천장되면서 봉은사는 수도산의 지금의 위치에 대규모로 확장 이전되었다. 1562년(명종 20) 문정왕후가 갑자기 세상을 뜨고 보우가 탄핵을 받아 제주도에 유배되었다가 그곳에서 장살되면서 선교양종과 승과가 차례로 폐지되었고 봉은사의 사세 역시 침체된 가운데 임진왜란을 맞게 되었다. 전쟁의 와중에 봉은사도 피해를 입었으나 1612년(광해군 4) 왕명으로 봉은사에 주석한 판선교도총섭(判禪敎都摠攝) 벽암각성(碧巖覺性)[1575~1660]에 의해 사찰이 중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636년 병자호란으로 봉은사는 당우 몇 칸만 남기고 전소되었다. 전쟁이 끝난 뒤 경림(敬林)을 중심으로 사찰을 중창하여 옛 형세를 다시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1665년(현종 6) 다시 가람의 일부가 손실되었고 이후 절의 중창 중수는 계속되었다. 1700년경 월저도안(月渚道安)[1638~1715]은 법당의 불상을 조성하기 위해 권선문(勸善文)을 썼고, 1765년(영조 41)에는 영파성규(影波聖奎)[1728~1812]가 봉은사 판사선생안(判事先生案)을 개로 정리했는데, 삼세여래의 개금불사도 이때 이루어졌다. 1777년(정조 원년)에는 삼장탱, 시왕탱, 사자상을 조성하고 석가와 미타상을 개금했다. 1790년(정조 14) 봉은사는 전국의 불교를 관장하는 5규정소(糾正所) 중 하나로 지정되었다. 1856년(철종 7)에는 남호영기(南湖永奇)[1820~1872]의 주도 아래 왕실의 내탕금과 중신들의 시주를 모아 『화엄경(華嚴經)』 80권 등 불서를 간행하고 3,479판에 이르는 경판을 보관할 판전(板殿)을 지었다. 당시 봉은사에 있던 당대의 명필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가 판전 현판을 써 걸었다.
일제가 국권을 강탈한 이후 조선 불교를 장악하기 위해 1911년 일제가 반포한 사찰령(寺刹令)에 의하여 조선 불교는 30본산제에 따라 운영되었다. 이에 따라 봉은사는 경기도 선종 대본산이 되어 광주, 고양, 양주, 시흥, 수원, 여주, 이천, 양평, 파주 등 8개 군 78개 말사를 관할하게 되었다.
1912년 주지로 부임한 나청호(羅晴湖)[1875~1934] 강백은 절 부근의 황무지를 개간하여 20만 평에 이르는 막대한 토지를 확보하고 사원을 중영했다. 1925년 7월의 을축년 대홍수 때 한강이 범람하여 떠내려가던 사람들 708명을 구제하고 절의 재물을 내어 이재민을 구호했다. 인근 주민들의 주선으로 수해구제공덕비가 세워지고 당시 지도층 인사들이 이를 기리는 시화인 『불괴비첩(不壞碑帖)』을 만들기도 했다.
또한 도심포교를 위해 1922년 마포포교당을 세운 것을 시작으로 1924년 안변, 1926년 인천, 1932년 서울 관동, 1933년 서울 현저동, 1934년 서울 옥천동 등 모두 6개의 포교당을 개설하여 적극적인 포교활동에 나서기도 했다. 1939년 화재로 판전을 제외한 나머지 건물들이 전소되었고, 1941년 태욱(泰旭)이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광복 후 봉은사는 조계종 총무원 직할사찰이 되었다. 한국전쟁으로 절의 대부분이 소실되었기 때문에 전쟁 후 중창불사가 이어졌고 1960년 통합종단 조계종이 출범하면서 봉은사도 새로 출발하였다. 1964년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의 수련도량으로 대학생 수도원이 봉은사에 건립되었고, 1972년에는 동국역경원이 설치되어 대장경을 우리말로 번역하여 한글대장경 조성의 초석이 되었다. 1975년 진신사리 1과를 봉안한 삼층석탑과 석등을 새로 조성했고, 1982년에는 진여문과 대웅전을 중창했으며 10년이 넘는 불사 끝에 1996년 높이 23m의 미륵대불을 조성하였다
[현황(조직,시설 현황 포함)]
현재 대웅전을 포함하여 선불당, 영산전, 지장전, 북극보전, 판전, 충령각, 운하당, 선원, 심검당, 법왕루, 보우당, 진여문 등의 당우가 있고 미륵대불을 조성하여 도심사찰의 위상을 이어가고 있다. 봉은사는 중앙승가대학(中央僧伽大學)의 지원사찰로서 승단의 교육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고 기초학당, 불교대학, 불교아카데미를 설치하여 지역주민과 신도들에 대한 불교교리 및 교양강좌에 힘쓰고 있으며, 템플스테이를 통해 도심 속 전통사찰에서 전통 사찰문화와 수행자의 일상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2009년 12월 21일 설립된 ‘사회복지법인 봉은’을 통해 장학사업, 노인복지사업, 의료비 지원사업, 긴급구호활동을 하고 있으며, 어린이집, 장애인복지관, 서울시 노숙인쉼터 등을 지원하며 시민운동에도 적극 참여하는 등 대중포교와 함께 도심사찰로서 불교의 역할에 많은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관련 문화재]
많은 불상과 불화가 있고 판전에는 3,479판의 경판이 봉안되어 있다. 이 가운데, 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 목판[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84호], 목조 사천왕상[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60호], 홍무 25년 장흥사명 동종[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76호], 판전 비로자나불도[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32호], 판전 현판[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83호], 판전 신중도[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30호], 북극보전 신중도[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33호], 영산전 목조 삼존불상[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27호], 영산전 목조 16나한상[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28호], 영산전 영산회상도[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37호], 영산전 신중도[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 제39호], 영산전 16나한도[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38호], 영산전 사자도[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 제38호], 선불당[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64호], 대웅전 신중도[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29호], 대웅전 감로도[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36호], 대웅전 삼장보살도[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35호], 대웅전 삼세불도[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34호], 대웅전 목조 삼세불상[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26호], 괘불도[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31호] 등의 문화재가 경내에 현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