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05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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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師琦 |
이칭/별칭 | 진명(晉溟)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산54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우택 |
활동 시기/일시 | 1554년 10월 8일 - 유사기 부평 도호부사 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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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57년 7월 26일 - 유사기 부평 도호부사 퇴임 |
묘소|단소 | 유사기 묘소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산54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진주(晉州) |
대표 관직 | 청주 판관 |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에 묘가 있는 조선 전기 관인
[가계]
본관은 진주(晉州). 할아버지는 유첨정(柳添汀)이고, 아버지는 유영(柳濚)이다. 좌의정을 지낸 유보(柳溥)[?~1544]의 조카이다. 형제로 유사석(柳師奭)이 있다. 『모재집(慕齋集)』의 기록을 통해 유사기(柳師琦)가 이세응(李世應)의 셋째 딸과 혼인하였음을 알 수 있고, 『사재집(思齋集)』을 통해 그의 딸이 김정국(金正國)의 큰아들 김사조(金嗣趙)와 혼인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선조실록(宣祖實錄)』을 통해 유화(柳和)라는 아들이 유보의 아들 유사상(柳師商)의 집으로 입양되었음이 확인된다.
[활동 사항]
유사기에 대한 자료는 여러 곳에 분산되어 있다. 『중종실록(中宗實錄)』에서 1538년(중종 33) 6월에 그가 평양 판관에 적임이 아니라는 간언이 올라온 것이 보인다. 정사룡(鄭士龍)의 시문집인 『호음잡고(湖陰雜稿)』에서 유사기가 어느 시점엔가 광흥창(廣興倉)의 책임자로 있었음을 볼 수 있다. 『사재집』에서는 그의 딸이 혼인할 무렵 유사기가 청주 판관으로 있었음이 보인다. 한편 『부평군읍지(富平郡邑誌)』를 통해 유사기가 1554년(명종 9)부터 1557년(명종 12)까지 부평 도호부사로 재임하였음이 확인된다. 이는 그가 『진주 유씨 만가보(晉州柳氏萬家譜)』에 ‘부사(府使)’로 기록되었던 근거를 말해 준다.
[묘소]
묘는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진주 유씨 묘역에 있다. 진주 유씨 묘역은 유사기의 증조할아버지인 유양(柳壤)이 매입한 땅으로, 유양과 유첨정, 유보 등 대대로 유양의 후손들이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