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03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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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柙墓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로 278-33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은선 |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 1624년 - 이합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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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 1680년 - 이합 사망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767년 - 이합 묘갈 건립 |
현 소재지 | 이합 묘 소재지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산69-1(N37° 39′ 53.2627″, E127° 01′ 11.6940″) |
성격 | 묘 |
양식 | 단분 합장묘 |
관련 인물 | 이합(李柙)[1624~1680]|여흥 민씨(驪興閔氏) |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덕수 이씨 묘역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이합의 묘.
[개설]
이합(李柙)[1624~1680]은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 이필(李泌)[1538~1592]의 손자이고, 부인은 능성 구씨(綾城具氏)로 연산군의 증손녀이다. 이합은 1674년 통정대부가 되었으며, 좌승지·대사간 등을 역임하였다.
[위치]
이합 묘(李柙墓)는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산69-1번지 덕수 이씨(德水李氏) 제2묘역에 위치해 있다. 덕수 이씨 제2묘역은 우이 계곡에서 방학로를 따라 고갯길을 넘어서면 도로 왼쪽에 있는 천주교 혜화동 교회 추모 공원 입구에 위치한다. 그중 가장 상단에 이합 묘가 있다.
[변천]
이합 묘는 원위치와 옛 석물의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몰년인 1680년경에 묘역이 조성되어 석물을 배치하였으며, 묘갈은 1767년(영조 43)에 추가로 하였다.
[형태]
이합 묘는 단분 합장묘로 부인 여흥 민씨(驪興閔氏)와 합장되었다. 좌향은 남향이다. 묘표, 혼유석, 석상(石床), 향로석, 석망주, 문석인, 동자석인, 묘갈 등을 갖추었다. 묘표는 원수형(圓首形)으로 비신 앞면에 ‘유명 조선 사간원 대사간 덕수 이공 합 윤축 지묘 증 숙부인 여흥 민씨 부좌(有明朝鮮司諫院大司諫 德水李公柙允迪之墓 贈淑夫人餘興閔氏祔左)’라고 새겼다. 묘표는 61×24×141㎝ 크기이다.
묘갈은 봉분 좌측에 세워져 있는데, 1767년에 추보된 것이다. 묘표를 제외하고, 중요 묘비인 묘갈이 세워진 인물은 덕수 이씨 묘역 중 이합이 유일하다. 묘갈은 개석 111×81×50㎝, 비신 60×30×148㎝, 대석 111×81×45㎝ 규모이다. 이합의 묘갈은 팔작지붕을 얹은 옥개 방부형(屋蓋方趺形)으로 비신은 오석(烏石)[흑요석]으로 만들었다. 이합 묘갈은 18세기 후반의 양식을 잘 보여 주는 묘비이다.
석인은 두 쌍이 있는데 한 쌍은 총 높이 211㎝의 문석인이고, 한 쌍은 높이 94㎝ 소규모의 문인형 동자석인이다. 문인형 동자석인은 상석과 묘주에 더 가깝게 전진 배치되어 있다. 문석인은 양관 조복(梁冠朝服)을 갖추었으며 17세기 후반 방형 신체를 가장 극대화한 양식이다. 큰 홀을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려 잡고 있으며 후수와 폐슬을 표현하였다.
문인형 동자석인은 양관과 유사한 얕은 관(冠)을 썼으며 홀을 들고 허리에는 요대를 묶었다. 동자석인은 16세기에서 18세기 초까지만 유행한 독특한 형식의 묘 석물이다. 그중 문인형 동자석인은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초까지 등장하는 도상으로, 불교 도상이 유교 도상으로 변용되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석망주는 총 높이 182㎝로 주신부에는 세호(細虎)를 조각하였다. 향로석은 육각 향탁의 형태이며 높이 43㎝이다. 이합 묘는 좁은 구역에 석물이 밀집되어 있는 17세기의 상설 배치를 잘 반영하고 있다.
[금석문]
주요 금석문으로 이합의 묘갈이 있다. 이합 묘갈의 비문은 이조 참판 남용익(南龍翼)이 짓고, 영의정 서지수(徐志修)가 썼으며 원임 영의정(原任領議政) 유탁기(兪拓基)가 전서(篆書)를 썼다. 입석 연대는 ‘황명 숭정 기원 무진 지후 일백사십 년 정해 칠월 입(明崇禎紀元戊辰之後一百四十年丁亥七月立)’이라고 적었다.
[현황]
이합 묘는 17세기의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다만 묘갈의 비신 오석 부분 상단이 벗겨지고 마모가 심하게 진행되었다. 기타 석물도 오염 및 훼손이 진행되었다.
[의의와 평가]
이합 묘는 덕수 이씨 묘역 중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는 대표적인 묘이다. 특히 17세기의 석물 특징과 상설 배치를 잘 반영하고 있다. 아울러 원수 방부의 묘표나 동자석인의 설치, 특히 문인형 동자석인으로의 발전 과정까지 전체 묘역이 공통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는 한 지역에 위치한 문중의 양식을 계승하고 있는 좋은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