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81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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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尹學祚 |
영어공식명칭 | Yoon Hakjo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일수 |
출생 시기/일시 | 1895년 - 윤학조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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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기/일시 | 1919년 - 윤학조 경성 중앙학림 재학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1일 - 윤학조 탑골공원 만세 시위 참여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30일 - 윤학조 대구 남문 밖 시장 만세 시위 주도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12일 - 윤학조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10월형 언도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5월 19일 - 윤학조 대구복심법원에서 항소 기각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7월 3일 - 윤학조 경성고등법원에서 상고 기각 |
추모 시기/일시 | 2020년 - 윤학조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출생지 | 진인동 - 대구광역시 동구 진인동 |
학교|수학지 | 중앙학림 - 서울특별시 |
활동지 | 대구 - 대구광역시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성 |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윤학조(尹學祚)[1895~?]는 1895년 지금의 대구광역시 동구 진인동에서 태어났다. 경성 중앙학림(中央學林)에 다니던 1919년 3월 30일 대구 남문 밖 시장에서 열린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활동 사항]
윤학조는 1919년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열린 독립 만세운동에 참가한 뒤 고향인 대구로 내려와 3월 23일 동화사 지방학림을 찾아가 권청학(權淸學)·김문옥(金文玉) 등 학승들을 만났다. 윤학조는 전국적 3·1운동의 전개에 대하여 설명을 한 뒤 동화사 지방학림 학승들도 만세 시위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였다.
3월 28일 윤학조는 동화사 심검당(尋劍堂)에 모인 지방학림 학승들과 함께 백안동시장에서 3월 30일 만세 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하지만 곧 시위 장소를 더 많은 인파가 모이는 덕산정[현 중구 덕산동] 남문 밖 시장[현 염매시장]으로 변경하고 시위에 사용할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이어 3월 29일에는 대구 도심인 지금의 남산동에 있는 동화사 포교당 보현사에서 면포로 된 대형 태극기를 만들었다.
1919년 3월 30일 오후 2시 윤학조를 비롯한 동화사 지방학림 학승들은 2,000여 명의 군중이 모인 남문 밖 시장에서 독립 만세를 외치고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그러자 총칼로 무장한 일제 경찰이 폭압적으로 시위를 진압하였다. 윤학조는 이때 다수의 시위 참가자들과 함께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고, 4월 12일 대구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0월형을 언도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지만 5월 1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항소가 기각되었고, 7월 3일 경성고등법원에서도 상고 기각으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윤학조의 공적을 기려 202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