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66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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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硏院瞻拜後 敬次老先生畵巖韻 |
영어공식명칭 | Visited Yeongyeongseowon and Reply to the Hwa-arm poem written by Teacher Lee-hwang |
이칭/별칭 | 「화암시」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대구광역시 북구|달서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곽명재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571년 - 도성유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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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649년 - 도성유 사망 |
편찬|간행 시기/일시 | 1851년 - 「연원첨배후 경차노선생화암운」 저자 도성유의 『양직집』 간행 |
배경 지역 | 화암 - 대구광역시 북구 연경동 |
성격 | 한시|칠언절구 |
작가 | 도성유 |
[정의]
대구 지역의 연경서원을 조선 후기 학자 도성유가 참배하고 이황의 한시에 차운하여 지은 한시.
[개설]
「연원첨배후 경차노선생화암운(硏院瞻拜後 敬次老先生畵巖韻)」를 쓴 도성유(都聖兪)[1571~1649]는 본관이 성주(星州)이고, 자는 정언(廷彦)이며, 호는 양직자(養直子)이다. 낙재(樂齋) 서사원(徐思遠)[1550~1615]과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다. 이윤우(李潤雨), 손처눌(孫處訥), 정경세(鄭經世)[1563~1633] 등과 교유하였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서사원을 따라 의병을 일으켜 군량을 조달하였다. 용호서원(龍湖書院)[현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서재리]에 배향되었다. 저서로 『양직집(養直集)』이 있다.
연경서원(硏經書院)은 대구 지역에 최초로 지어진 서원으로, 이황(李滉)[1501~1570]·정구·정경세 3인과 함께 별도로 향현사(鄕賢祠)를 세워 전경창(全慶昌)[1532~1585]과 이숙량(李淑樑)[1519~1592]을 제향하였던 서원이다.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하여 훼철되었다. 연경서원의 터는 현재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과 북구 연경동 사이에 있다. 이황은 연경서원 건립 공사가 완공되어 가고 있던 1565년(명종 19) 봄에 「서원십영(書院十詠)」 시를 지었는데, 그중 한 수가 연경서원을 노래한 「화암서원(畫巖書院)」이다. 화암서원은 연경서원의 별칭이다.
[구성]
「연원첨배후 경차노선생화암운」은 칠언절구이다. 「화암시」라고도 한다.
[내용]
화리기암학사성(畫裏奇巖學舍成)[그림 같은 기암 아래 학사가 이루어지니]
년년월삭강유경(年年月朔講遺經)[해마다 매달 초하루에 경전을 강론하네]
동방불유오부자(東方不有吾夫子)[동방에 우리 선생님 계시지 않았더라면]
취몽인간숙환성(醉夢人間孰喚醒)[몽매한 사람들 사이에서 누가 일깨웠겠는가]
[특징]
「연원첨배후 경차노선생화암운」은 이황의 「화암서원」에 사용된 청(青) 계열의 운목을 사용하여 지은 칠언절구이다.
[의의와 평가]
「연원첨배후 경차노선생화암운」은 승구(承句)의 내용으로 당시 대구 지역에 행하여지고 있었던 통강(通講)에 대하여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