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66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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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硏經書院 敬次退溪先生韻 |
영어공식명칭 | Yeongyeongseowon[Reply to the Hwa-arm poem written by Teacher Lee-hwang] |
이칭/별칭 | 「연경서원 화암시」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대구광역시 북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곽명재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680년 - 송명기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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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755년 - 송명기 사망 |
배경 지역 | 화암 - 대구광역시 북구 연경동 |
성격 | 한시|칠언절구 |
작가 | 송명기 |
[정의]
대구의 연경서원을 노래한 퇴계 이황의 한시를 조선 후기 학자 송명기가 차운하여 지은 한시.
[개설]
「연경서원 경차퇴계선생운(硏經書院 敬次退溪先生韻)」의 배경 지역인 연경서원(硏經書院)은 대구 지역에 최초로 지어진 서원으로, 이황(李滉)[1501~1570]·정구(鄭逑)[1543~1620]·정경세(鄭經世)[1563~1633] 3인과 함께 별도로 향현사(鄕賢祠)를 세워 전경창(全慶昌)[1532~1585]과 이숙량(李淑樑)[1519~1592]을 제향하였던 서원이다.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하여 훼철되었다. 연경서원의 터는 현재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과 북구 연경동 사이에 있다. 이황은 연경서원 건립 공사가 완공되어 가고 있던 1565년(명종 19) 봄 「서원십영(書院十詠)」 시를 지었는데, 그중 한 수가 연경서원을 노래한 「화암서원(畫巖書院)」이다. 화암서원은 연경서원의 별칭이다. 「연경서원 경차퇴계선생운」은 「연경서원 화암시」라고도 한다.
송명기(宋命基)[1680~1755]는 본관이 야성(冶城)이고, 자는 정부(定夫)이며, 호는 매헌(梅軒)이다. 아헌(啞軒) 송원기(宋遠器)의 후손(後孫)이고, 아버지는 송희(宋熙)이다. 아들 남촌(南村) 송이석(宋履錫)과 더불어 칠곡(漆谷)[현 대구광역시 북구 매천동]의 매양서원(梅陽書院)에 배향되었다. 저서로 『매헌집(梅軒集)』이 있다.
[구성]
「연경서원 경차퇴계선생운」은 칠언절구이다.
[내용]
강도존현학사성(講道尊賢學舍成)[도의 강론과 현인 존숭 위하여 서원을 이루었으니]
고명사의가횡경(顧名思義可橫經)[이름 돌아보고 뜻 생각하며 경전 연구하여야 하네]
즉금공리인개취(卽今功利人皆醉)[지금은 공리에 사람들이 모두 취하여 있으니]
수위사문일환성(誰爲師門一喚醒)[누가 사문을 위하여 대번 밝게 깨칠 수 있을까?]
[특징]
「연경서원 경차퇴계선생운」은 이황의 「화암서원」에 사용된 청(青) 계열의 운목을 사용하여 지은 칠언절구이다.
[의의와 평가]
송명기는 평생을 성인(聖人)의 경전(經典)과 현인(賢人)의 전(傳)을 읽으며 성정을 도야하였다. 특히 이황을 존숭하여 『퇴계서절요(退溪書節要)』를 저술하기도 하였다. 「연경서원 경차퇴계선생운」은 송명기가 평생을 추구한 삶의 지향이 매우 절실히 드러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