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65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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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輓詞[鄭師哲] |
영어공식명칭 | Funeral Ode For Teacher Gye-dong Written By Jung-Sachul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대구광역시 수성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곽명재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530년 - 「만사」[정사철] 저자 정사철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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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 1585년 - 「만사」[정사철] 창작 |
저자 몰년 시기/일시 | 1593년 - 「만사」[정사철] 저자 정사철 사망 |
편찬|간행 시기/일시 | 1859년 - 『계동집』 간행 |
배경 지역 | 계동선생유적비 - 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 |
성격 | 애제류|만사 |
작가 | 정사철 |
[정의]
조선 전기 학자이며 대구의 공산의진군 초대 의병장인 정사철이 대구 출신인 전경창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만사.
[개설]
「만사」[정사철] 저자 정사철(鄭師哲)[1530~1593]의 본관은 동래(東萊)이며, 자는 계명(季明), 호는 임하(林下)이다. 아버지는 정세검(鄭世儉)이고, 어머니는 진산진씨(珍山陳氏) 진가모(陳嘉謨)의 딸이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동곡리 출신이다. 1592년(선조 25) 4월에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자, 7월 6일에 대구광역시 동구 신무동에 있는 부인사(夫人寺)에서 향회를 열고 대구 지역 의병을 모아 공산의진군(公山義陣軍)을 결성하여 초대 의병장이 되었다. 대구의 금암서원(琴巖書院)에 아들 정광천(鄭光天)[1553~1594]과 함께 제향되었다.
전경창(全慶昌)[1532~1585]의 본관은 경산(慶山)이며, 자는 계하(季賀), 호는 계동(溪東)·만오(晩悟)이다. 정헌대부(正憲大夫) 예조판서(禮曹判書)인 문평공(文平公) 전백영(全伯英)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전순(全珣)이고, 어머니는 김해송씨(金海宋氏) 송식(宋軾)의 딸이다. 대구 수성현 파잠리(巴岑里)[현 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에서 태어났다. 이황(李滉)[1501~1570]의 문인이다. 1573년(선조 6)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관직은 예조좌랑·병조좌랑·검열·정언 등을 역임하였다. 대구 유학의 개조(開祖)로 평가받으며, 대구 유학의 수서원(首書院)인 연경서원(硏經書院) 창건에 중추적 역할을 하였다. 대구의 연경서원에 제향되었다. 저서로 『계동집(溪東集)』이 있다.
[구성]
「만사」[정사철]는 2수(首)이며, 첫 번째 수는 칠언율시(七言律詩)이고, 두 번째 수는 오언율시(五言律詩)이다.
[내용]
「만사」[정사철] 2수 중 첫 번째 수이다. 전경창의 문학적 성취와 학문적 지향을 노래하며 죽음을 애도하였다.
풍자늠름진영걸(風姿凜凜眞英傑)[풍모와 자태 늠름한 참된 영걸이었고]
아성온온길사의(雅性溫溫吉士儀)[아름다운 성품 따뜻한 길사의 모습이었네]
사필삼엄사마필(史筆森嚴司馬筆)[사필은 삼엄하였으니 사마천의 필법이었고]
청시고고두릉시(淸詩高古杜陵詩)[청시는 고고하여 두보의 시풍이었네]
반생수절경륜지(半生雖切經綸志)[반생토록 경륜의 포부 간절하여]
일념난망퇴노기(一念難忘退老期)[일념으로 퇴계 선생의 가르침 잊지 않았네]
가석이향혼적막(可惜異鄕魂寂寞)[가련하구나, 타향에서 외로운 혼 적막하니]
고원매죽대처비(故園梅竹帶悽悲)[옛 동산 매죽도 슬픈 기색 띠고 있네]
「만사」[정사철] 2수 중 두 번째 수이다. 평생을 함께 하여 온 벗인 전경창의 죽음을 슬퍼하였다.
차차오계하(嗟嗟吾季賀)[슬프구나! 나의 벗 계하 전경창이여!]
지기숙여공(知己孰如公)[나를 알아주는 이 누가 그대와 같겠는가]
자소동고고(自少同孤苦)[어릴 때는 의지할 곳 없이 외로움 함께했고]
중년이달궁(中年異達窮)[중년에 들어선 영달과 궁함이 달랐었네]
기자리택익(幾資麗澤益)[이택의 유익함으로 몇 번이고 도움을 주고]
다하절시공(多荷切偲功)[간절히 권면하여 준 공으로 많은 도움 있었네]
공로림천약(共老林泉約)[함께 임천에서 노닐며 늙어 가자는 약속이]
처량일몽중(凄涼一夢中)[처량하게도 꿈속 일이 되어 버렸구나]
[특징]
「만사」[정사철] 첫 번째 수는 ‘지(支)’ 계열의 운목이 사용된 칠언율시이다. 전경창의 성품과 평생의 성취를 드러내며 벗의 죽음을 슬퍼하였다. 「만사」[정사철] 두 번째 수는 ‘동(東)’ 계열의 운목이 사용된 오언율시이다. 벗과 나누었던 그동안의 정감을 벗의 죽음과 나란히 두어 벗을 잃은 허탈함과 상실감을 극대화하였다.
[의의와 평가]
「만사」[정사철]는 2수 모두 첩어(疊語)를 두어 시의 운율감을 증대시켰고, 한시의 자구 배치의 정격을 보여 주고 있다. 전경창의 의용(儀容)과 성품, 직분, 학문적 성취, 그리고 벗의 죽음을 슬퍼하는 정서를 두 수의 시에 축약하여 제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