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64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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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侍湯日記 |
영어공식명칭 | Sitang Diary |
이칭/별칭 | 「친환문병일기」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대구광역시 북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영호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704년 - 「시탕일기」 저자 서명보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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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 1738년~1761년 - 「시탕일기」 저술 |
저자 몰년 시기/일시 | 1778년 - 「시탕일기」 저자 서명보 사망 |
편찬|간행 시기/일시 | 1814년 - 『북곽실기』에 「시탕일기」 수록하여 필사본으로 간행 |
배경 지역 | 서명보 효자각 - 대구광역시 북구 연암공원로7길 9[산격동 1134-1] |
성격 | 일기 |
작가 | 서명보 |
[정의]
1738~1761년 동안 대구 출신인 효자 서명보가 아버지의 병환을 돌보면서 쓴 일기.
[개설]
「시탕일기(侍湯日記)」의 저자 서명보(徐命普)[1704~1778]의 본관은 달성(達城)이고, 자는 화극(華極)이며, 호는 북곽(北郭)이다. 아버지는 서익지(徐翊祉)이고, 어머니는 오산김씨(鰲山金氏) 김억추(金億秋)의 딸이다. 서명보는 타고난 성품이 온화하고 인자하며 효성스럽고 근신하였다. 일곱 살에 어머니의 상을 당하였고, 아버지가 중풍에 걸린 이후 타계할 때까지 아버지의 병환을 돌보았다. 대구 지역 유생(儒生)과 암행어사, 관찰사가 계장(啟狀)을 지어 올려 1799년 통훈대부 공조좌랑(通訓大夫工曹佐郎)에 특별히 추증되었고, 1841년 정려(旌閭)를 하사받았다. 서명보는 지금의 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 출신이다. 저서로 『북곽실기(北郭實記)』가 있다. 「시탕일기」의 이칭은 「친환문병일기」이다.
[구성]
「시탕일기」는 1738년부터 1761년까지 1541일 동안 아버지의 병환을 돌보며 쓴 일기 기록이다.
[내용]
「시탕일기」는 탕약을 조제하거나 복용한 사실과 문병 온 사람에 대한 기록이 대부분이다. 탕약을 복용한 날이 1,205일이며 나머지는 탕약을 조제한 사실이나 문병 온 사람에 대한 기록이다. 아버지가 풍병(風病)을 앓기 시작하여 돌아가시기까지 병환의 증세와 건강 상태를 기록하고, 처방한 약제나 복용한 탕약을 빠짐없이 기록하였다. 아울러 탕약을 복용하는 가운데 의원을 모시고 와서 침구를 처치하기도 하였는데, 침구를 놓은 의원의 성명에 대하여서도 모두 기록하였다. 정성을 들여 지은 탕약과 침구를 통한 치료에도 신통한 효과가 없어 답답한 심정으로 점술가를 방문하여 점을 친 이야기도 기록되어 있다.
[특징]
「시탕일기」에서 서명보의 아버지가 앓던 주된 병명은 풍현(風眩)이었다. 따라서 「시탕일기」에는 풍현을 치료하기 위한 처방과 상시 복용한 음식에 대한 정보가 상세하다.
[의의와 평가]
「시탕일기」는 24년간의 병환 일기이다. 병증의 경중(輕重)과 의약의 종시(終始)는 물론 문병 온 사람들이 빠짐없이 기록되어,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귀중한 일기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