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63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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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徐命普 墓碣銘 幷序 |
영어공식명칭 | Seo Myeongbo's Myogalmyeong and perface |
이칭/별칭 | 서명보의 묘갈명과 서문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영호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757년 - 김희순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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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 1802년 - 「서명보 묘갈명 병서」 창작 |
편찬|간행 시기/일시 | 1814년 - 「서명보 묘갈명 병서」 저자 김희순의 『북곽실기』 간행 |
저자 몰년 시기/일시 | 1821년 - 김희순 사망 |
배경 지역 | 서명보 효자각 - 대구광역시 북구 연암공원로7길 9[산격동 1134-1] |
성격 | 비지류|묘갈명 |
작가 | 김희순 |
[정의]
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 출신인 효자 서명보를 위하여 1802년 김희순이 지은 묘갈명.
[개설]
서명보(徐命普)[1704~1778]는 본관이 달성(達城)이고, 자가 화극(華極)이며, 호가 북곽(北郭)이다. 아버지는 서익지(徐翊祉)이고, 어머니는 오산김씨(鰲山金氏) 김억추(金億秋)의 딸이다. 서명보는 타고난 성품이 온화하고 인자하며 효성스럽고 근신하였다. 7세에 어머니의 상을 당하였고, 아버지가 중풍에 걸린 이후 평생을 병환을 돌보았다. 대구 지역 유생(儒生)과 암행어사, 관찰사가 계장(啟狀)을 지어 올리는 노력으로 1799년 통훈대부 공조좌랑(通訓大夫工曹佐郎)에 특별히 추증되었고, 1841년 정려(旌閭)를 하사받았다. 저서로 『북곽실기(北郭實記)』가 있다.
「서명보 묘갈명 병서」를 쓴 김희순(金羲淳)[1757~1821]은 본관이 안동(安東)이고, 자는 태초(太初)이며, 호는 경원(景源)·산목(山木)이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조선 후기 문신으로 초계문신에 발탁되었고, 포천 암행어사, 괴산과 서산의 군수, 영남안찰사, 호남안찰사, 한성부판윤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1802년 이조참판으로 있을 때 「서명보 묘갈명 병서」를 지었다.
[구성]
「서명보 묘갈명 병서(徐命普 墓碣銘 幷序)」는 상부에 서문(序文)과 하부에 명(銘)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
「서명보 묘갈명 병서」의 서문의 내용은 서명보의 효행을 알 수 있는 일화를 열거하고 효행으로 추증된 일을 적고 있다. 묘갈명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달성의 서씨(徐氏)들은 대대로 크게 알려진 종족이로다. 어찌 규조(圭組)를 기필하겠는가, 명예와 덕을 귀중하게 여겼도다. 공께서 실제로 그것을 지녔으니 효도는 백행의 근원이로다. 은어와 비둘기 등은 또한 효성에 말미암아 찾아왔도다. 하물며 그분이야말로 떳떳한 인륜을 법칙으로 지켰음에랴. 남의 자식이 된 사람들이여, 이 두드러진 비문을 보게나.[達城之世, 華聞之族. 何必圭組, 所貴名德. 公實有之, 孝哉源百. 若鱗若羽, 亦由誠格. 矧伊人矣, 秉彝同則. 爲人子者, 視此顯刻.]”
[특징]
「서명보 묘갈명 병서」 서문은 서명보의 행장이라고 하여도 될 만큼 일화를 자세하게 제시하였다.
[의의와 평가]
김희순은 「서명보 묘갈명 병서」를 통하여 백성을 교화시키고 바른 행실을 일으키고자 서명보의 효행을 더욱 찬양하고 일화를 상세히 기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