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63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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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忠善 時調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석배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571년 - 김충선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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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642년 - 김충선 사망 |
편찬|간행 시기/일시 | 1798년 - 김충선 시조 목활자로 간행된 『모하당실기』에 수록 |
성격 | 고전문학|시조 |
작가 | 김충선 |
[정의]
임진왜란 때 귀화하여 대구 지역에 정착한 김충선이 지은 시조.
[개설]
김충선(金忠善)[1571~1642]은 임진왜란(壬辰倭亂)[1592] 때 가토 기요마사[加籐淸正] 휘하의 좌선봉장으로 침략하였다가 조선이 예양(禮讓)의 나라임을 알고 귀화하였고, 왜적을 물리치는 데 앞장섰다. 일본 이름은 사야카[沙也可]이며 호는 모하당(慕夏堂)이다. 김충선이 남긴 여러 편의 한시와 국문시가는 『모하당실기(慕夏堂實記)』 3권에 수록되어 있다. 시조는 「잉방시(仍防詩)」, 「남풍유감(南風有感)」, 「우흥(寓興)」, 「우회(寓懷)」, 「우회(又懷)」 등 5수가 전하는데, 사설시조와 엇시조로 보는 견해도 있고, 시조로 볼 수 없다는 견해도 있다.
[내용]
「우흥(寓興)」을 현대어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산중에 기약 두고 우록촌 돌아드니/ 황학봉(黃鶴峰) 선유동(仙遊洞)은 일일상대 내 벗이요/ 봉암(鳳巖)은 술 준(樽) 삼고 자양(紫陽)과 백록동(白鹿洞)은 도 닦는 마당 되어/ 자손의 현송(絃誦) 소리 들리난고 한천(寒泉) 맑은 물에 진심(塵心)을 씻어 볼까 하노라”
「우회(寓懷)」를 현대어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예의동방 좋단 말을 듣고 만이속(蠻夷俗) 다 버리고 일조(一朝)에 들어오니 / 삼강오륜도 밝거니와 의관문물도 갖출시고 / 생봉요순(生逢堯舜) 하였으니 강구연월 동락태평할까 하노라”
「우회(又懷)」를 현대어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예의문물 탐을 내어 지친 골육 다 버리고 / 만리수방(萬里殊方)의 외로이 던져 있어 / 이내 평생에 부모 분산(墳山)을 다시 볼 길이 없어 글로 슬퍼하노라”
[특징]
「우흥」에서는 우록촌(友鹿村)[지금의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의 빼어난 계곡과 산, 맑은 경치를 노래하고 있다. 마치 주자가 강학하던 곳과 같이 자손들은 유도(儒道)에 전념하고, 자신은 맑은 물에 세속에 찌든 마음을 씻어 보고자 하였다. 「우회」는 조선이 예의의 나라임을 알고 귀화하여 살아서 요순시절(堯舜時節)을 만났으니 함께 태평세월(太平歲月)을 누리고자 하였다. 「우회」에서는 멀리 고국에 두고 온 골육들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심정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의의와 평가]
김충선의 시조는 귀화인인 저자가 조선에 적응하여 사는 모습과 고국에 두고 온 골육들을 그리워하는 심정을 진실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귀화인 문학으로서 가치와 의의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