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63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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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己未年 九月 十二日 焚黃 告由文 |
영어공식명칭 | Boonhwang Goyoomoon On September 12, 1799 |
이칭/별칭 | 「기미구월십이일 분황고유문」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대구광역시 북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영호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727년 - 이의조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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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 1799년 - 「기미년 9월 12일 분황 고유문」 창작 |
저자 몰년 시기/일시 | 1805년 - 이의조 사망 |
편찬|간행 시기/일시 | 1814년 - 『북곽실기』에 「기미년 9월 12일 분황 고유문」 수록하여 간행 |
배경 지역 | 서명보의 묘 - 대구광역시 북구 검단동 |
배경 지역 | 서명보 효자 정려각 - 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 |
성격 | 축문|고유문 |
작가 | 이의조 |
[정의]
조선 후기 대구 출신 효자 서명보의 벼슬이 추증되어 분황할 때 1799년 이의조가 서명보의 묘 앞에서 고유하기 위하여 지은 글.
[개설]
「기미년 9월 12일 분황 고유문(己未年九月十二日焚黃告由文)」을 지은 이의조(李宜朝)[1727~1805]의 본관은 연안(延安)이고, 자는 맹종(孟宗)이며, 호는 경호(鏡湖)이다. 이재(李縡)[1680~1746]와 송능상(宋能相)[1710~1758]의 문인이다.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학문에 전심하였다. 자신의 학문적 기반을 바탕으로 저술 활동뿐만 아니라, 방초정(芳草亭)을 교육장으로 활용하여 후진 양성에도 전력하였다. 아버지의 유명을 따라 『가례증해(家禮增解)』를 완성하였다. 조정에서 공릉참봉(恭陵參奉)을 제수하였지만 사양하였고, 다시 첨중추오위장(僉中樞五衛將)을 제수하였다.
서명보(徐命普)[1704~1778]의 본관은 달성(達城)이고, 자가 화극(華極)이며, 호가 북곽(北郭)이다. 아버지는 서익지(徐翊祉)이고, 어머니는 오산김씨(鰲山金氏) 김억추(金億秋)의 딸이다. 서명보는 타고난 성품이 온화하고 인자하며 효성스럽고 근신하였다. 일곱 살에 어머니의 상을 당하였고, 아버지가 중풍에 걸린 이후 타계할 때까지 지극하게 아버지의 병환을 돌보았다. 대구 지역 유생(儒生)과 암행어사, 관찰사가 계장(啟狀)을 지어 올림으로써 1799년(정조 23) 통훈대부 공조좌랑(通訓大夫工曹佐郎)에 추증되었고, 1841년(헌종 7) 정려(旌閭)를 하사받았다. 서명보는 지금의 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 출신이다. 저서로 『북곽실기(北郭實記)』가 있다.
분황(焚黃)은 죽은 이에게 벼슬이 추증되면서 조정에서 내려온 사령장(辭令狀)과 황색 종이에 쓴 부본(副本)을 자손이 선조의 무덤에 고하고 부본을 태우는 의식을 말한다. 고유(告由)는 어떠한 일이 생겼을 때, 사유를 종묘나 사당에 고하는 일을 말한다. 서명보의 효자 정려각은 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에 있으며, 서명보의 묘는 북구 검단동에 있었으나 동구 신용동 동산으로 이전하였다.
[구성]
「기미년 9월 12일 분황 고유문」은 서명보가 죽은 후 벼슬이 추증되자 분황할 때 서명보가 추증된 사유와 과정을 담고 있는 고유문이다. 1814년 간행된 『북곽실기』에 부록으로 실려 있다. 「기미년 9월 12일 분황 고유문」에서 기미년(己未年)은 1799년에 해당한다.
[내용]
「기미년 9월 12일 분황 고유문」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우리 집안은 대대로 효도와 우애가 서로 전하여졌도다. 이에 조고(祖考)에 이르러 후손에게 넉넉하게 물려주어 전대(前代)를 빛나게 하였도다. 어버이를 지극한 효성으로 섬겨 하늘을 감동시키고 사람도 감격시켰도다. 사림(士林)들이 일제히 부르짖어 암행어사가 임금에게 진술하였도다. 효도로 다스리는 세상에서 임금께서 특수한 영광을 포상하였도다. 높은 벼슬을 증직하였으니 은전(恩典)이 유명(幽明)에 이르렀도다. 이에 기미년 6월 6일에 교지(敎旨)가 내려와 통훈대부 공조좌랑에 추증되었도다. 공경히 교서(敎書)를 받들어 신주(神主)를 쓰고 분황례(焚黃禮)를 행하도다. 영광스럽게 고유를 한번 행하니 숨겨졌던 덕을 드러내어 선양하도다. 임금의 은혜는 하늘과 같으니 감사하게 받음에 그지없도다. 훌륭한 의식을 여기에서 거행하니 슬픔과 기쁨이 서로 이르도다. 삼가 맑은 술과 몇 가지 안주로써 제사를 드리나니 상향(尙饗)하소서.”
[특징]
「기미년 9월 12일 분황 고유문」은 4언체 형식의 축문이다.
[의의와 평가]
「기미년 9월 12일 분황 고유문」은 서명보의 추증의 과정과 이유를 과장하지 않고 사실 그대로를 간명하게 나타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