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0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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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之彦 旌孝閣 |
영어공식명칭 | Jeongjieon Jeonghyogak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대구광역시 수성구 노변공원로7길 7[시지동 500-6]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전일주 |
건립 시기/일시 | 1892년 - 정지언 정효각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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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정지언 정효각 - 대구광역시 수성구 노변공원로7길 7[시지동 500-6] |
성격 | 정려각 |
[정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시지동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정지언의 정려각.
[개설]
정지언 정효각(鄭之彦 旌孝閣)은 조선 후기 효자인 면암(勉庵) 정지언(鄭之彦)[1740~1814]의 효행을 기리고자 건립한 정려각이다. 1892년(고종 29)에 사림(士林)에서 정지언의 효행을 관찰사에게 아뢰어 조정으로부터 효자의 정려가 내려졌다.
정지언은 부모와 조부모를 모시면서 효성을 다하여 섬겼다고 한다. 할아버지의 상에 아버지인 정동범이 6년 동안 시묘(侍墓)를 할 때는 정지언도 곁에서 아버지를 모셨다고 한다. 정지언의 효행과 관련하여 다양한 일화가 전하여 오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번은 정동범이 병들어 어떤 약도 통하지 않자, 조왕신과 북두칠성에게 지극정성으로 빌었다고 한다. 어느 날 밤 꿈에 할아버지인 정이태가 나타나 이르길, “네 아비의 병에는 개의 기름이 즉효약이다”라고 하여 놀라 깨어나 보니, 범이 개 한 마리를 물고 와서 던져 주었고 그 개로 기름을 내어 아버지에게 먹이니 이내 쾌차하였다고 한다. 또한 부친상을 당하였을 때 묘소의 나무를 붙잡고 통곡하니 그 소나무가 말라 죽었다가 초상이 끝나자 다시 되살아났고, 지나친 슬픔으로 기력을 잃었을 때는 홀연히 신인(神人)이 나타나 약물을 먹여 주어 기력을 회복하였다고 한다. 정지언은 형제간의 우애도 남달라 맏형인 정지섭(鄭之燮)을 지성으로 받들며 평생 동안 우애를 지켰다고 한다.
[위치]
정지언 정효각은 대구광역시 수성구 노변공원로7길 7[시지동 500-6]에 있는데, 동래정씨(東萊鄭氏) 시지 문중의 재실인 충효재(忠孝齋) 앞에 있다. 정지언 정효각 옆에는 정동범 정충각이 나란히 있다.
[변천]
정지언 정효각은 정동범 정충각과 함께 1892년에 세워졌고, 정지언 정효각 앞의 정효비는 1996년 충효재 성역화 사업 때 세워진 것이다.
[형태]
정지언 정려각 내부의 정려 편액에는 ‘효자 증통정대부 이조참의 정지언지문(孝子贈通政大夫吏曹參議鄭之彦之門)’이 쓰여 있고, 정려비에는 ‘효자 증이조참의 면암 청주정공 정효비(孝子贈吏曹參議勉庵淸州鄭公旌孝碑)’이 쓰여 있다.
[현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