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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통일열사추모제준비위원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071
한자 四九統一烈士追慕祭準備委員會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윤정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99년 4월 9일연표보기 - 4.9통일열사추모제준비위원회 조직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99년 4월 9일 - 4.9통일열사추모제준비위원회 4.9통일열사 정신 계승 및 추모제 매년 개최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09년 4월 9일 - 4.9통일열사추모제준비위원회 4.9통일열사 정신 계승 및 추모제 개최 종료
이전 시기/일시 2009년 4월 28일 - 4.9통일열사추모제준비위원회 4.9인혁열사계승사업회가 결성되면서 사업 수행 이전
해체 시기/일시 2009년 5월연표보기 - 4.9통일열사추모제준비위원회 해체
최초 설립지 4.9통일열사추모제준비위원회 - 대구광역시 일대
성격 사회운동단체
설립자 경북대민주동문회 등 20여 개 사회운동단체

[정의]

1999년 대구광역시에서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의 진상규명과 명예 회복을 위하여 설립된 단체.

[개설]

제1차 인민혁명당 사건과 함께 제2차 인민혁명당 사건이라고도 하는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박정희 정권의 대표적 인권탄압 사례로 꼽힌다. 1974년 4월 25일 중앙정보부는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전국민주청년학생연맹[민청학련]이 북한의 지령을 받아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를 조직하고 국가를 전복하려 하였다고 발표한다. 1975년 4월 8일 박정희 정권의 반인권적 고문에 의하여 조작된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 대법원 최종심이 열렸다. 대법원에서 국가 전복을 꾀하였다는 혐의로 도예종, 여정남, 서도원, 하재완, 이수병, 김용원, 우홍선, 송상진 등 8명은 사형 확정 판결을 받았다. 이 외에 8명은 무기징역, 4명은 징역 20년, 3명은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도예종 등 8명은 사형 확정 판결을 받은 지 불과 18시간 후인 1975년 4월 9일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기습적으로 사형이 집행되는 사법살인이 벌어졌다.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은 20여 년이 지나도록 사건의 기초적인 진상규명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에 경북대민주동문회, 민주평화통일 대구·경북회의 등 20여 개 대구·경상북도 지역 사회운동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1999년 4월 9일 4.9통일열사추모제준비위원회를 조직하였다. 4.9통일열사추모제준비위원회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사법살인을 당한 8명 열사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매년 4월 9일 추모제를 개최하였다.

[설립 목적]

4.9통일열사추모제준비위원회박정희 군사 독재정권에 의하여 저질러진 대표적 용공 조작 사건인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의 진실을 대구 시민들에게 알리고, 사형 당한 8명 열사의 명예 회복을 법적으로 받아내고자 대구·경상북도 지역의 사회운동단체들을 중심으로 조직되었다.

[변천]

4.9통일열사추모제준비위원회는 1999년 4월 결성된 후 추모제를 개최하는 등 활동을 지속하여 오다 2009년 4월 28일 4.9인혁열사계승사업회가 결성되면서 추모제 등의 제반 사업을 4.9인혁열사계승사업회가 이어받아 수행하고 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4.9통일열사추모제준비위원회는 1999년 4월 9일부터 2008년 4월 9일까지 매년 추모 문화제 개최와 묘소 참배, 강연회 등을 진행하였다.

[의의와 평가]

4.9통일열사추모제준비위원회의 활동은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으로 희생된 8명의 열사들이 2007년 1월 22일 서울중앙지법 재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로 확정되는데 기여한 바가 크다. 특히 사형을 당한 8명 중 도예종, 서도원, 송상진, 하재완, 여정남 5명이 대구 지역에서 활동하였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대구 지역 차원의 활동은 중요하였다. 이후 4.9통일열사추모제준비위원회의 활동은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으로 희생된 8명의 열사들이 2007년 1월 22일 서울중앙지법 재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로 확정되는 데 기여한 바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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