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09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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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嶺南鎭事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재두 |
[정의]
1894년에 경상도 5개 영장 진의 사례를 모아 엮은 책.
[개설]
『영남진사례』는 1894년 11월에 상주진, 대구진, 경주진, 진주진, 안동진의 다섯 진에서 작성한 사례를 모아 엮은 것이다. 당시 경상도에는 6개 영장(營將) 진(鎭)이 있었는데 김해진은 빠져 있다.
[저자]
『영남진사례(嶺南鎭事例)』의 저자는 상주진, 대구진, 경주진, 진주진, 안동진의 영장이다.
[편찬/간행 경위]
1894년(고종 31) 7월 1일 조선 정부는 각 도의 감영·병영으로부터 주부군현(州府郡縣)·진(鎭)·역(驛)·보(堡)에 이르기까지 인사와 재정에 관한 사례를 함께 실은 읍지를 수합하였다. 『영남진사례』의 상주진과 경주진의 제목에 “개국 503년 11월일(開國五百三年十一月日)”이라고 되어 있어 1894년 11월에 편찬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형태/서지]
『영남진사례』는 필사본이며, 크기는 가로 28.8㎝, 세로 18㎝이다. 1책 96장으로 되어 있고, 각 장의 행은 10행이다. 자수는 일정하지 않다.
[구성/내용]
조선 후기 경상도에는 규모가 큰 고을 6곳의 진에 영장을 두었다. 중영(中營)은 대구부에 있었고, 감영 중군이 중영장을 겸하였다. 김해부에 있던 별중영(別中營)은 김해부사가 겸하였다. 전영(前營)은 안동부, 좌영(左營)은 상주목, 우영(右營)은 진주목에, 후영(後營)은 경주부에 있었다. 『영남진사례』 중 상주진의 사례책 맨 마지막에 상주영장의 서압이 있는 것을 보아 작성 책임자가 영장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영남진사례』는 사례책이기 때문에 수입과 지출 내역을 간략하게 기록하였다. 하지만 수입과 지출 내역을 통해서 진영이 소속 각 고을과 맺고 있는 관계나 진영의 구성원 등을 파악할 수 있다.
「대구진사례」는 중영장의 진인 대구진의 사례책으로, 봉입질(捧入秩)과 각하인예하질(各下人例下秩)만으로 구성되었다. 수입은 수미(需米)·식리전·수포전(收布錢)을 비롯하여 순영과 속읍인 대구·밀양·인동·청도·경산·영산·현풍·창녕·자인이 제공하는 각종 물품가로 이루어져 있다. 각하인예하질은 하인들에게 지급하는 소목가(燒木價), 동지(冬至)나 세시(歲時)에 주는 돈, 아무녀(衙巫女)·통인·방자·식모에게 주는 돈 등을 열거하였다.
[의의와 평가]
영장은 군사 편제상 병영의 관할을 받았다. 지방 군사력의 중핵을 이루었고, 토포사로서 순영의 지휘 아래 토포 등 치안을 담당하였다. 『영남진사례』는 지방 진영의 실상에 접근할 수 있는 귀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