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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301873
한자 遺蹟
영어의미역 Relics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칠곡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희돈

[정의]

경상북도 칠곡군에 전해 내려오는 유적.

[개설]

칠곡군 일대는 다양한 문화 유적이 산재되어 있다. 천연기념물 제146호로 지정된 칠곡군 왜관읍 낙산리칠곡 금무봉 나무고사리 화석 산지(漆谷 錦舞峰 나무고사리 化石 産地), 왜관읍 매원리의 선돌군과 고인돌군, 석전리 고인돌군, 동명면 금암리 고인돌군, 지천면 창평리 신동 입석(新洞 立石)[경상북도 기념물 제29호]과 고인돌군 등은 대표적인 선사 시대의 유적이다.

왜관읍 매원리 고분군, 가산면 다부리 고분군, 기산면 봉산리 고분군, 동명면 가천리 고분군, 석적읍 남율리 고분군, 약목면 남계리 고분군, 무림리 고분군, 복성리 고분군, 지천면 오산리 고분군, 용산리 고분군 등은 삼국 시대의 대표적인 분묘 유적이다.

한편 칠곡군 관내에는 산성과 봉수대 등의 국방 유적도 곳곳에 분포한다. 사적 제216호로 지정된 칠곡군 가산면 가산리칠곡 가산산성(漆谷 架山山城)과 경상북도 기념물 제67-2호로 지정된 북삼읍 숭오리금오산성(金烏山城), 약목면 관호리관호토성(觀湖土城), 그리고 약목면 무림리박집산 봉수대(朴執山 烽燧臺) 터기산면 각산리각산리 봉수대(角山里 烽燧臺) 터 등이 대표적이다.

불교 유적으로는 신라 고찰인 칠곡군 동명면 구덕리송림사(松林寺), 약목면 남계리용화사(龍華寺), 왜관읍 석전리흥국사(興國寺) 등의 사찰과 약목면 복성리정도사지(淨兜寺址)가 있다. 이밖에 불교 문화재로는 보물 제189호로 지정된 칠곡 송림사 오층 전탑(漆谷 松林寺 五層 塼塔)을 비롯하여, 보물 제510호로 지정된 칠곡군 동명면 기성리칠곡 기성리 삼층 석탑(漆谷 箕聖里 三層 石塔), 보물 제655호로 지정된 기산면 노석리칠곡 노석리 마애불상군, 지천면 영오리 석불 입상, 동명면 구덕리송림사 부도군, 가산면 가산리대둔사 부도, 기산면 각산리대흥사지 부도군 등이 있다.

유교 유적으로는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117호로 지정된 칠곡군 지천면 신리사양 서당 강당(泗陽 書堂 講堂)과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585호로 지정된 창평리칠곡 녹봉 정사지(漆谷 鹿峰 精舍址), 기산면 평복리소암 서원(嘯巖 書院), 석적읍 중리봉양 서원(鳳陽 書院), 북삼읍 숭오리어필각(御筆閣), 경상북도 기념물 제38호로 지정된 약목면 남계리신유 장군 유적(申瀏 將軍 遺蹟) 등이 있다.

금석 유적으로는 보물 제251호로 지정된 칠곡군 북삼읍 숭오리칠곡 선봉사 대각 국사비(漆谷 僊鳳寺 大覺 國師碑)를 비롯하여 동명면 구덕리송림사 기성 대사비(松林寺 箕聖 大師碑), 남원리 비석군(南元里 碑石群), 봉암리 비석군(鳳岩里 碑石群), 북삼읍 오평리 비석군(吾坪里 碑石群), 약목면 복성리 비석군(福星里 碑石群), 기산면 죽전리 비석군(竹田里 碑石群) 등이 있다.

[고고 유적]

선사 시대는 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로 나누고 석기 시대를 다시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로 나눌 수 있다. 구석기 시대의 유물로는 칠곡군 석적읍 중리에 구석기 중기의 것이 많이 알려졌으며 신석기 시대에 관해서는 별로 그 유적이나 유물이 알려진 바가 없다. 그러나 청동기 시대에 속하는 유적이나 유물은 경상북도 지방에서도 많이 발견되었다.

경상북도 지역의 구석기 유적은 구미 공업 전문 대학 건너편 낙동강 동안인 칠곡군 석적읍 중리에 해당한다. 유적 동쪽에 있는 성곡리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개울물이 중리 유적의 제1, 2 지구 앞을 지나 낙동강으로 흘러들어간다. 제1 지구 앞에는 남쪽에 있는 200m 정도 높이의 산에서 북쪽으로 흘러내려가는 조그마한 개울이 있는데 수로에는 많은 자갈들이 나뒹굴고 있다.

제2 지구는 제1 지구로부터 북서쪽으로 약 350m 떨어져 있으며 동쪽으로 행한 산비탈의 대부분이 깎여 높이 약 4m의 벼랑이 노출되어 있는데 그 속에서 석기가 발견되었다. 이것으로 미루어볼 때 중리 유적의 입지적 조건은 구석기인들이 살기에 적합하였으리라고 추측되며 이 근처에서 발견된 석재들을 가지고 석기 제작을 하였을 것으로 믿어진다.

또 칠곡 중리 유적에서 발견된 전형적인 르발루아 첨기(Levallois尖器) 1점과 식칼[chopper] 1점, 그리고 돌망치 2점의 형태학적 특징을 종합하여 유적의 성격을 분석해 보면 먼저 중리 제1 지구에서는 르발루아 첨기 1점과 돌망치 1점이 발견되었으며 르발루아 첨기는 구석기 중기의 대표적인 첨기로 볼 수 있다. 이 르발루아 첨기는 지표로부터 2.5m 깊이의 퇴적층 밑에서 원위치 그대로 발견되었다.

동시에 제2 지구에서 발견된 식칼 1점과 돌망치 1점은 각각 지표 50㎝와 120m 되는 깊이의 퇴적층 밑에서 발견되었는데, 이것도 원위치에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식칼은 르발루아 첨기와 함께 최소한 구석기 중기에 해당된다고 여겨지며 경우에 따라서는 연대가 더 올라갈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2점의 돌망치 자체로는 편년이 어렵지만 제2 지구의 경우 층의 단면에 나타난 위치로 보아 구석기 중기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석기의 형태학적 편년만으로는 정확한 문화의 내용을 알기 어렵기 때문에 앞으로 지질학 및 고고학적 층을 정밀히 발굴하고 유적의 토양과 화분 등을 분석하여 지금까지 나타난 유적의 성격을 구체적으로 뒷받침하는 일이 필요하다. 어쨌든 중리 유적의 발견으로 경상북도 지역에 인류가 살기 시작한 것은 적어도 구석기 중기부터일 것이라는 확증이 섰다. 특히 중석기(中石器) 문화는 구석기 문화를 이으면서 신석기로 넘어가는 과도기 문화인데 이에 관해서는 경상북도에서는 물론 한반도의 구석기 문화가 중석기 시대까지 전달되지 아니하고 계속되었는지의 여부는 알 수 없다. 다만 주변 지역에서의 예로 보아 잔석기[細石器]를 중심으로 한 중석기 문화의 자료가 출현하기를 기대할 따름이다.

고인돌은 신석기 시대부터 청동기 시대에 걸친 거석 기념물로서 부족장의 무덤이다. 남부 지방은 굄돌이 작고 개석은 두꺼워 바둑판과 비슷하게 보인다. 경상북도 기념물 제29호로 지정된 칠곡군 지천면 창평리신동 입석왜관읍 석전리, 지천면 심천리, 석적읍 중리, 동명면 금암리·기성리 등에 고인돌이 있다.

삼국 시대의 고분으로 기산면 봉산리, 약목면 복성리·무림리, 지천면 심천리 고분군동명면 금암리의 북실 고분군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복성리 고분군은 1960년에 발굴·조사되어 토기·철기 등의 유물이 많이 출토되었다.

[국방 유적]

국방에 관한 유적으로는 사적 제216호로 지정된 칠곡군 가산면 가산리칠곡 가산산성과 경상북도 기념물 제67-2호로 지정된 북삼읍 숭오리금오산성, 약목면 관호리관호토성, 그리고 무림리박집산 봉수대 터기산면 각산리각산리 봉수대 터가 있다.

칠곡 가산산성임진왜란[1592]과 병자호란[1636]을 겪은 후 잇따른 외침에 대비하기 위해서 세워진 석축 산성으로 내성·중성·외성을 각각 다른 시기에 쌓았고, 성 안에는 별장을 두어 항상 수호케 하였다. 하양, 신령, 의흥, 의성, 군위의 군영과 군량이 칠곡 가산산성에 속하며 칠곡 도호부도 이 산성 내에 있었다.

중요 시설은 내성 안에 있으며, 중성에는 4개 고을의 창고가 있어 비축미를 보관해서 유사시에 사용하게 하였다. 1960년의 집중 폭우로 문 위쪽의 무지개처럼 굽은 홍예문이 파손되고 성벽의 일부가 없어졌으나 그 밖에는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다. 칠곡 가산산성은 험한 자연지세를 이용한 조선 후기의 축성 기법을 잘 보여 주고 있는 대표적인 산성이다.

금오산성은 구미의 남서쪽에 있는 해발 997m의 금오산을 경계로 구미시와 김천시, 칠곡군에 걸쳐 위치하고 있다. 금오산성의 둘레는 약 3,500m에 이르며 현재 남문, 서문, 중문, 암문 및 건물 터가 남아 있다. 금오산성금오산의 정상부를 테뫼식으로 두른 내성과 외성의 이중 구조로 되어 있다. 고려 말 선산, 안동, 개령, 성주 등지에서 많은 주민을 징발하여 축조한 산성이다.

관호토성칠곡군 약목면 관호리 임강 마을 뒤쪽 백포산에 위치하고 있다. 삼국 시대에 축성된 토성으로 ‘백포산성’으로도 불리고 있다. 관호토성은 내성과 외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내성은 동서의 길이가 18m, 폭이 50m 가량이고, 북쪽으로 구릉 지대를 따라 100m 정도 바깥에 외성이 있었던 흔적이 남아 있다. 현재 서쪽 성벽과 낙동강에 접한 북쪽 성벽이 비교적 완전하게 남아 있다. 또한 낙동강에 접하는 동쪽과 남쪽은 가파른 절벽을 그대로 이용하여 성을 형성하였으며, 전체 모습은 산꼭대기를 둘러싼 테뫼식에 가깝다.

박집산 봉수대칠곡군 약목면 무림리 박집산[347.7m]의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봉수대의 터는 장방형에 가까운 타원형인데, 그 형식은 석심토축(石心土築)[돌을 쌓고 그 위에 흙을 덮은 양식]을 기반으로 상부에는 토축만으로 혼합된 석축으로 형성되어 있다. 『안동부읍지』에 의하면 박집산 봉수대는 인동읍에서 서쪽으로 낙동강을 건너 남쪽 12㎞[30리] 지점에 위치하며, 박집산 봉수대에서 남쪽으로 4㎞[10리] 떨어진 각산리 봉수대의 신호를 받아 12㎞ 북쪽에 있는 건대산 봉수대로 보냈다고 한다.

[불교 유적]

불교 사찰로는 신라 내물왕 때 창건되었다는 칠곡군 동명면 구덕리송림사를 비롯하여 약목면 남계리용화사, 왜관읍 석전리흥국사 등이 있고, 절터로는 1031년(현종 22) 기명(記銘)의 오층 석탑 조성 형지기(造成 形止記)가 발견된 것으로 유명한 약목면 복성리정도사지가 있다.

이밖에 불교 문화재로는 보물 제189호로 지정된 칠곡 송림사 오층 전탑을 비롯하여, 보물 제510호로 지정된 동명면 기성리칠곡 기성리 삼층 석탑, 지천면 황학리백운리 석탑(白雲里 石塔), 보물 제655호로 지정된 기산면 노석리칠곡 노석리 마애불상군, 지천면 영오리 석불 입상, 동명면 구덕리송림사 부도군, 가산면 가산리대둔사 부도, 기산면 각산리대흥사지 부도군 등이 있다.

송림사는 544년(진흥왕 5) 진나라에서 귀국한 명관이 중국에서 가져온 불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창건한 사찰이다. 그 뒤 대각 국사 의천(義天)[1055~1101]이 1092년(선종 9)에 중창했고 1243년(고종 30) 몽골군에 의해 폐허가 되었다가 다시 중창했으나 1597년(선조 30) 왜병들의 방화로 가람이 소실되었고 1686년(숙종 12)에 기성 대사에 의해 대웅전과 명부전이 중창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는데 대웅전 동쪽 약 50m 지점의 도로변에는 기성 대사를 기리는 높이 2m의 비석과 석종형 부도 4기가 있다.

송림사 대웅전 앞에 서 있는 오층 전탑은 흙으로 구운 벽돌을 이용해 쌓아 올렸다. 탑을 받치는 기단(基壇)은 벽돌이 아닌 화강암을 이용하여 1단으로 마련하였다. 상륜부는 1959년에 해체하여 복원 작업을 하면서 원형대로 모조한 것이다. 비록 모조품이긴 하나, 통일 신라 시대 금동 상륜부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어 귀중한 자료가 된다. 전탑은 9세기 통일 신라 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측되며, 보수 시 탑신의 몸돌 내부에서 목불과 사리 장치 등이 발견되었다. 전탑 앞에는 석등이 위치하고 있다.

송림사 대웅전에서 서쪽으로 약 100m 떨어진 밭 가운데에는 윗부분이 부러져 60×50㎝가량의 둘레로 90㎝ 정도만 남아 있는 송림사 당간 지주 2기가 서 있는데 창건 당시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되며 과거 송림사의 규모가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케 해준다.

칠곡군 동명면 기성 삼거리 국도변 좌측에 있는 칠곡 기성리 삼층 석탑은 통일 신라 시대의 전형적인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린 형식으로 체감률도 신라 석탑의 전형을 잘 따르고 있다. 칠곡 기성리 삼층 석탑을 중심으로 주변이 경작지로 개간되었으나 법성사의 터로 알려져 있고, 탑도 법성탑이라 불리고 있다.

[유교 유적]

유교 관계 문화재 및 기념물로는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117호로 지정된 칠곡군 지천면 신리사양 서당 강당과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585호로 지정된 창평리칠곡 녹봉정사지, 기산면 평복리소암 서원, 석적읍 중리봉양 서원, 북삼읍 숭오리어필각, 경상북도 기념물 제38호로 지정된 약목면 남계리신유 장군 유적 등이 있다.

사양 서당한강 정구(鄭逑)[1543~1620]·석담 이윤우(李潤雨)[1569~1634]·송암 이원경(李遠慶)[1525~1571] 세 사람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곳이다.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폐쇄되면서 현재는 강당인 경회당만 남아 있다. 경회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새 날개 모양으로 쌓은 익공 양식으로 꾸몄다.

녹봉 정사는 원래 녹봉사라는 큰 절이 있었던 곳인데, 조선 시대 숭유 억불 정책의 일환으로 사찰의 규모가 점점 축소되다가 1561년(명종 16) 성주 목사 금계(錦溪) 황준량(黃俊良), 덕계(德溪) 오건(吳健) 등이 중심이 되어 녹봉 정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창건 당시에는 성정당, 시습재, 양정헌, 양호루, 관물대, 천연지 등이 있었으나 현재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익공계 건물만 남아 있다.

소암 서원칠곡군 기산면 평복리 가림이 마을 뒷산에 위치한다. 1702년(숙종 28)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채몽연(蔡夢硯)·채무(蔡楙)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847년(헌종 13)에 장내범(張乃範)을 추가 배향하여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왔다. 그 뒤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철거되어 지금까지 복원하지 못하였다. 철거되기 전의 경내 건물로는 사우(祠宇)·신문(神門)·강당·동재(東齋)·서재(西齋)·전사청(奠祀廳)·주사(厨舍) 등이 있었다.

어필각칠곡군 북삼읍 숭오리 숭산 마을 뒷산에 위치한다.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의 목조 기와집이다. 이 어필각에는 조선 태종이 ‘공심일시(公心一視)’ 네 글씨를 직접 써서 개국 공신인 유창(劉敞)[1352~1420]에게 하사한 어필 묵서(御筆墨書)가 보관되어 있으며 유창의 영정도 함께 봉안되어 있다.

신유 장군 유적은 조선 후기의 무신 신유(申瀏)[1619~1680]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신유는 함경북도 병마우후(兵馬虞候)로 있을 때 중국 청나라의 부탁으로 1658년(효종 9) 군대를 이끌고 흑룡강 부근에서 러시아 군사를 무찌르는 큰 공을 세웠다. 이를 나선 정벌(羅禪 征伐)[나선은 러시아를 가리킴]이라 하며, 신유는 이 원정의 내용을 『북정일기(北征日記)』라는 기록으로 후세에 남겼는데, 『북정일기』는 우리나라와 러시아 간에 최초의 접촉으로 현지 사령관이 쓴 기록이란 점에서 세계사적인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금석 유적]

금석 관련 유적으로는 보물 제251호로 지정된 칠곡군 북삼읍 숭오리칠곡 선봉사 대각 국사비를 비롯하여 동명면 구덕리송림사 기성 대사비, 종2품 이상의 고관의 무덤에 세운 왜관읍 석전리이담명 신도비(李聃命 神道碑), 북삼읍 오평리장석룡 신도비(張錫龍 神道碑), 약목면 복성리신익황 신도비(申益愰 神道碑)와 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지천면 심천리현풍 곽씨 쌍열비(玄風 郭氏 雙烈碑), 효부를 기리고자 세운 황학리 효부비(黃鶴里 孝婦碑), 이외에도 북삼읍 오평리 비석군, 동명면 남원리 비석군, 봉암리 비석군, 약목면 복성리 비석군, 기산면 죽전리 비석군 등이 있다.

칠곡 선봉사 대각 국사비칠곡군 북삼읍 숭오리 숭산 마을의 북쪽 금오산 자락에 위치한 대각사라는 작은 암자 옆에 비각이 있다. 고려 11대 문종의 넷째 왕자인 대각 국사 의천의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1132년(인종 10)에 건립된 고려 시대의 비다. 비좌는 장방형으로 측면 앙련(仰蓮)과 복련(伏蓮)을 새겼고 비갓에는 당초문대를 얇게 조각하였다.

비신 상단에는 ‘천태 시조 대각 국사비명(天台始祖大覺國師碑銘)’을 전서로 쓴 제액을 중앙에 두고 양쪽에 봉황을 새겼다. 비면의 가장자리로는 폭 8㎝ 가량의 당초문대를 돌렸다. 비명은 ‘남숭산 선봉사 해동 천태 시조 대각 국사비명(南嵩山 僊鳳寺 海東 天台 始祖 大覺 國師碑銘)’이다. 비문은 전체 37행에 각 행 71자이며, 당대의 문장가였단 한림시독학사(翰林侍讀學士) 임존(林存)이 짓고 인(麟)이라는 스님이 글씨를 썼다고 기록되어 있다. 원래 이 비석에서 남서쪽으로 약 200m 떨어진 곳에 선봉사가 있었다고 한다.

개성(開城)의 영통사(靈通寺)에도 1125년에 세워진 대각 국사비 1기가 남아 있다. 금오산칠곡 선봉사 대각 국사비대각 국사가 천태교를 수립한 시조(始祖)임을 밝히기 위해 세운 것이고 개성의 것은 증시(贈諡)를 위해 세운 것이라 한다.

송림사 기성 대사비송림사에서 동쪽으로 약 400m 지점인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다. 비각은 송림사가 1243년(고종 30) 몽고의 침략으로 절이 소실된 상태에서 400여 년간 지속되어 오다가 1686년(숙종 12) 기성 대사에 의해 대웅전과 명부전이 중창되었으므로 이를 기리기 위하여 건립된 것이다.

오평리 비석군에는 장희원 구휼 기념비(張禧遠 救恤 紀念碑)와 장길상 구휼 불망비(張吉相 救恤 不忘碑) 등 선정비 2기가 남아 있다.

남원리 비석군에는 이세재 불망비(李世載 不忘碑)를 비롯하여 서신갑 국사비(徐信甲 國事碑), 서□도 불망비(徐□道 不忘碑), 김성림 불망비(金聖林 不忘碑), 김명 후세 난망비(金溟 後世 難忘碑), 남상국 유혜비(南相國 遺惠碑), 김노응 불망비(金魯應 不忘碑), 서규현 불망비(徐奎賢 不忘碑), 김재오 불망비(金在五 不忘碑), 최백종 불망비(崔白宗 不忘碑), 이경재 불망비(李景在 不忘碑), 서지한 불망비(徐志翰 不忘碑), 홍우길 거사비(洪佑吉 去思碑), 배병철 선덕비(裵炳喆 善德碑), 남원리 허 부사비(南元里 許 府使碑) 등 선정비 15기가 남아 있다.

봉암리 비석군에는 한은주 불망비(韓殷周 不忘碑)[1871년], 한전규 송덕비(韓銓奎 頌德碑)[1888년], 한국원 선덕비(韓國源 善德碑)[1902년], 한극원 송덕비(韓克源 頌德碑)[1912년], 한제동 선덕비(韓薺東 善德碑)[1910년], 한제동 송덕비(韓薺東 頌德碑)[1910년] 등 선정비 6기가 남아 있다.

복성리 비석군에는 이일우 기념비(李一雨 記念碑), 이일우 불망비(李一雨 不忘碑), 장길상 송덕비(張吉相 頌德碑), 오진영 불망비(吳晋泳 不忘碑), 이계사 불망비(李稽思 不忘碑), 정규악 기념비(鄭圭握 紀念碑), 이진회 애민 선정비(李晋會 愛民 善政碑), 정계동 선정 애민비(鄭癸東 善政 愛民碑), 강선 불망비(姜銑 不忘碑), 이익해 애민 선정비(李翼海 愛民 善政碑), 이의태 애민 선정비(李宜泰 愛民 善政碑) 등 선정비 11기가 남아 있다.

죽전리 비석군에는 강선 선정비(姜銑 善政碑), 김두남 선정비(金斗南 善政碑), 정필동 선정비(鄭必東 善政碑) 등 선정비 3기가 남아 있다.

[명승 유적]

명승 및 경관으로는 도립 공원의 일부인 칠곡 가산산성과 경북 팔경 가운데 첫째인 금오동천(金烏洞天)칠곡군 북삼읍 숭오리에 있으며, 천연기념물 제146호로 지정된 칠곡 금무봉 나무고사리 화석 산지왜관읍 낙산리에 있다.

금오동천은 산성(酸性) 내지 중성 마그마의 분출암인 유문암 내지 안산암으로 이루어져 있어 깊고 험준한 모습을 보여 준다. 계곡의 곳곳에는 웅장한 기암괴석과 아름다운 폭포 및 담(潭)이 연이어 발달하여 있다. 폭포는 계곡 위로부터 제1 폭포인 선녀탕, 제2 폭포인 구유소[소구유의 형태를 닮음], 제3 폭포인 용시소[용이 살고 있다고 알려짐], 제4 폭포인 벅시소[‘금오동천’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음] 등이 있다.

나무고사리 화석은 약 1억 3000만 년 전에 이 부근에서 번성했던 고사리와 비슷한 잎을 가진 고사리 식물의 화석이다. 잎은 고사리와 같으나 나무줄기와 가지가 있고, 잎이 그 가지에 붙어있기 때문에 나무고사리라 이름하였다. 나무고사리는 일본 서남쪽, 대만, 중국의 남쪽 등 열대 지방에서 자생하는 식물이지만,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나무고사리 화석은 그 줄기가 현재 열대 지방에서 자생하고 있는 나무고사리의 줄기와는 아주 다르다. 따라서 식물 진화·분포 등 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클 뿐만 아니라, 자연사 자료로서의 가치도 매우 크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6·25 전쟁 기념물]

칠곡군은 국방의 요충지이자 천연 요새로서 전쟁 관련 문화유산이 많이 남아 있다. 특히 6·25 전쟁 때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으로 충혼탑, 전적 기념관, 전승비 등 전쟁과 관련한 유적들이 많다. 6·25 전쟁 관련 전적 기념관 및 기념물을 살펴보면 칠곡군 왜관읍 왜관리호국의 다리[1901년 건립], 석적읍 중지리왜관 지구 전적 기념관[1978년 건립], 가산면 다부리다부동 전적 기념관[1981년 건립], 왜관읍 석전리왜관 지구 전승비[1959년 건립], 가산면 금화리의 미 제27연대 전승비[1971년 건립], 석적읍 중지리의 왜관 지구 전적비[1978년 건립], 가산면 다부리의 다부동 전적비[1981년 건립], 왜관읍 석전리의 충혼비[1955년 건립]와 순국 경찰 위령비[1988년 건립], 왜관읍 삼청리의 충혼탑[1973년 건립], 가산면 다부리의 구국 경찰 충혼비[2001년 건립], 구국 용사 충혼비[1995년 건립], 구국 용사 위령비[1997년 건립] 등이 있다. 이들 기념물들은 왜관 지구 공방전과 다부동 전투가 벌여졌던 왜관읍, 가산면, 동명면 일대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칠곡군에는 보물 6점, 사적 1점, 천연기념물 1점 등 국가 지정 문화재 8점과 유형 문화재 6점, 기념물 3점, 민속 문화재 1점 등 도 지정 문화재 10점, 문화재 자료 9점, 등록 문화재 2점 등 모두 29점의 문화재가 지정되어 있다. 특히 칠곡군의 지정 문화재 중에는 전통 사찰과 석탑, 불상 등 불교 관련 유적이 가장 많다. 이처럼 숭유억불 정책으로 불교가 탄압받았던 조선 시대에도 불교 유적이 보존되었던 것은 국방의 요지였던 칠곡 지역에 호국 불교의 전통이 유지되고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그리고 묵헌 종택(默軒 宗宅), 칠곡 해은 고택(漆谷 海隱 古宅) 등 명문가의 고택은 칠곡 지역이 기개 높은 선비 문화의 전통을 이어왔음을 보여준다. 또 칠곡 지역은 영남 지방에서 천주교가 가장 먼저 포교되고 탄압을 받았던 곳으로서 지역의 지정 문화재 중 천주교 유적이 많다.

한편 호국의 고장 칠곡 지역에는 전쟁 관련 유적과 유물이 많은데 칠곡 가산산성, 금오산성은 대표적인 국방 유적이고 신유 장군 유적은 나선 정벌에 나섰던 칠곡 출신 명장 신유의 호국 정신을 기리는 문화재이다. 이밖에도 칠곡 지역에는 임진왜란, 일제 강점기, 6·25 전쟁 등과 관련된 유적·유물과 기념물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어 칠곡은 전쟁의 비극을 모르는 전후 세대들에게 호국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산 교육장이 되고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4.03.03 내용 중 유적명 변경 칠곡 기성동 삼층석탑->칠곡 기성리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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