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003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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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浮屠 |
영어의미역 | Stupa |
이칭/별칭 | 부두(浮頭),포도(浦圖),불도(佛圖)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
집필자 | 황정숙 |
[정의]
경상북도 칠곡군에 있는 고승의 사리를 보관하는 사리탑 또는 유골을 안치한 승려의 묘탑.
[개설]
부도(浮屠)는 부두(浮頭), 포도(蒲圖), 불도(佛圖) 등 여러 가지로 표기되는데, 원래 불타(佛陀)와 같이 붓다(Buddha)를 번역한 것이라 하고 또는 솔도파(率屠婆, stupa), 즉 탑파(塔婆)의 전음(轉音)이라고도 한다. 따라서 어원으로 본다면 불타가 곧 부도이므로 외형적으로 나타난 불상이나 불탑, 즉 불사리를 장치한 붓다의 묘탑의 성격을 지닌 것인데, 우리는 일반적으로 부도라고 하면 곧 승려의 묘탑이라고 국한하여 사용하고 있다.
부도를 세우는 것은 불교식 장례법에서 생겨난 것이지만 불교가 전래된 때부터 묘탑의 건립이 시작된 것은 아니라고 여겨진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된 시기는 4세기 후반이지만 연대가 그때까지 올라가는 묘탑은 문헌상으로도 볼 수 없고, 다만 627~649년경에 원광법사(圓光法師)의 묘탑, 즉 부도를 세웠다는 『삼국유사(三國遺事)』의 기록으로 이 시기를 부도 건립의 시초로 보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부도라는 용어로 승려의 사리탑을 가리킨 것은 신라 하대부터라 여겨진다.
부도는 다른 석조물과 달리 부도에 따르는 탑비가 건립되어 있어 부도의 주인공과 그의 생애 및 행적 등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당시의 사회상, 문화상, 조각 양식 등을 알 수 있어 주목된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부도는 전국적으로 방대하나 칠곡에 남아있는 부도는 그리 많지 않아 대둔사의 부도 1기, 송림사의 부도 4기, 대흥사지의 부도 8기가 대표적이다.
[대둔사 부도(大芚寺 浮屠)]
칠곡군 가산면 가산리 산 242번지에 자리하고 있는 대둔사 초입에 있는 석종형 부도로 홍수로 수몰된 뒤 흩어져 있던 것을 수습해 안치한 것이라고 한다. 방형좌대 위에 종형의 탑신, 그리고 옥개석을 갖추고 있다. 석질과 형태 등으로 볼 때 서로 이질감을 보이고 있어 원래의 상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탑신의 크기는 높이 100㎝, 직경이 65㎝이고, 옥개석은 너비 73㎝, 높이 40㎝ 정도이다. 아무런 명문이 확인되지 않는다.
[송림사 부도군(松林寺 浮屠群)]
칠곡군 동명면 송림길 73[구덕리 91-6] 송림사에 있는 부도 4기이다. 송림사 부도군은 송림사에서 동쪽으로 약 300m 지점, 대웅전 동쪽 약 50m 지점의 도로변에 기성대사비각(箕城大師碑閣) 옆에 위치하고 있다. 송림사에 주석했던 고승들의 부도로 여겨지지만 남아있는 기록이나 명문이 없어 어느 승려의 묘탑인지는 명확히 알 수 없다. 석종형 부도로 부도의 크기는 각각 118㎝, 113㎝, 108㎝, 85㎝이다.
[대흥사지 부도군(大興寺址 浮屠群)]
칠곡군 기산면 각산3길 113[각산리 417] 일대에 있는 대흥사지에 남아있는 부도군으로 각산리 서티마을에서 북쪽으로 2㎞ 지점인 서진산 계곡사면에 지금은 근년에 새로 창건한 대흥사가 불사를 일으키고 있는 일대에 위치한다. 평탄한 대지에 부도 8기가 일렬로 늘어선 모습인데, 끝에 1기는 공간 부족인지 열을 벗어나 전체적으로 ㄱ자 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부도의 양식은 일렬로 늘어선 7기는 석종형 부도인데, 상륜부로 복발과 보륜을 표현하고 가장 위쪽에 원추형 보주를 얹고 있다. 열을 벗어난 1기는 기단석 위에 몸돌인 탑신부를 얹고, 그 위에 4각형 옥개를 얹은 부도로 옥개의 추녀는 간략하게 반전되었고, 몸돌인 탑신부는 원구형과 종형의 중간형으로 동최대경이 가운데 위치한다. 부도에는 탑신마다 승려들의 이름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으나 대부분 마멸이 심하여 판독하기 어려운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