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4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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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釜也里事件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권대웅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949년 11월 19일 - 부야리 사건 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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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빨치산 보복 사건 |
관련 인물/단체 | 손의현 |
[정의]
1949년 11월 19일 청도읍 부야리 주민들이 빨치산에 의해 보복 살해당한 사건.
[개설]
해방 정국과 6·25 전쟁 기간 중 경상북도 청도군에서는 좌익과 우익 사이에 여러 가지 충돌 사건들이 발생하였다. 빨치산에 의해 보복 살해당한 부야리 사건도 그 중 하나이다.
[역사적 배경]
청도군은 험준한 지형적 원인으로 6·25 전쟁 이전부터 빨치산 활동이 두드러진 지역이었다. 청도군 청도읍 부야리에도 뒷산[679m]이 위치하고, 곰티재와 접하고 있는 지형이어서 해방 정국과 6·25 전쟁 후 빨치산들이 빈번하게 출몰하는 지역 중 한 곳이었다.
[경과]
1949년 여름에 헌병 중사로 근무하던 손의현이 휴가차 고향인 청도읍 부야리 집에 머물던 중 마을에 침입한 빨치산 1명을 체포하여 서울 헌병대 본부로 압송해 간 일이 있었다.
1949년 11월 19일 밤 국군 복장을 한 빨치산들이 당시 마을 경비대 본부인 권수복의 집을 방문해 마을 경비원 전원에 대해 소집 명령을 내려 집결시켰다. 빨치산들은 경비원 7명이 집결하자 모두 감금한 다음 수족을 포박하고, 7명을 차례로 쌓아 올린 뒤 죽창으로 마구 찔러 살해하고 시체에 불을 지르는 만행을 저질렀다. 만행이 끝난 뒤에도 마을 곳곳에 방화와 약탈을 자행하고 떠났다.
[결과]
부야리 사건 으로 빨치산에 의해 피해를 입은 사람은 김정현, 손종식, 형의수(邢義壽), 최종묵, 최갑덕, 손인현, 권수복 등 7명이며, 박현채, 김종화 등 2명은 그날 마침 곰티재에서 경비 근무를 하다가 빨치산에 의해 살해를 당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빨치산에 대한 지역민들의 경계심이 한층 공고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