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07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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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全州 李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정라면|충청남도 보령시 대천동 |
시대 |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문광균 |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 1542년 - 이몽열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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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 시기/일시 | 16세기 말[추정] - 이몽열 입향 |
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 1607년 - 이몽열 사망 |
본관 | 전주 - 전라북도 전주시 |
입향지 | 전주 이씨 - 충청남도 보령현 |
성씨 시조 | 이한(李翰) |
입향 시조 | 이몽열(李夢說) |
[정의]
이한을 시조로 하고 이몽열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이거 성씨.
[개설]
전주 이씨(全州 李氏)는 이한(李翰){?~?]을 시조로 하고, 이몽열(李夢說)[1542~1607]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이거 성씨이다.
[연원]
전주 이씨(全州 李氏)의 시조는 신라 시대 때 사공(司功) 벼슬을 지낸 이한(李翰)이다. 전주 이씨 족보인 『선원선계(璿源先系)』에 따르면, 전주의 토착 세력으로 명문 태생이었다고 한다. 22세손 이성계(李成桂)가 조선을 건국하고 왕위에 오르면서 전주 이씨는 왕성이 되었다. 전주 이씨는 122개로 분파되었으며, 대부분이 왕자대군(王子大君)과 왕자군(王子君)을 파조로 한다.
전주 이씨의 분파는 시대에 따라 크게 세 갈래로 구분할 수 있다. 즉, 이성계의 고조할아버지인 이안사(李安社)의 상계(上系)에서 갈라진 파, 이안사 이후 이성계 이전에 갈라진 파, 이성계의 후손으로 왕자대군과 왕자군을 파조로 하는 파이다. 완원군파(完原君派)의 보령 입향조는 부흥도정(傅興都正) 이몽열이다.
[입향 경위]
완원군(完原君) 이수(李𢢝)는 성종(成宗)의 5남이고 이몽열은 의원부정(義原副正) 이억(李億)의 아들로 완원군의 증손이다. 완원군의 증손은 7명인데, 임진왜란(壬辰倭亂), 이몽학(李夢鶴)의 난 등의 사건들을 전후해서 서울을 떠났다. 이몽열은 보령현에 별장을 만들었다. 이때부터 보령현은 부흥도정 후손들의 터전이 되었다. 추가적인 기반으로는 보령의 대표적 사족(士族)인 광산 김씨의 사위였다는 점이다. 이후 보령에 은거하면서 조존성(趙存性)[1554~1628], 이상우(李商雨)와 교우하였으며, 향약 등을 강론하고 주민 교화에 힘썼다. 사후 경기도 파주의 선영으로 돌아갔지만, 아들 이완(李琬)의 후손들이 번창하면서 보령 지역에서 세거하게 되었다.
[현황]
2015년 통계지리정보서비스 본관 인구 분포 조사에 따르면, 충청남도 보령시에 거주하는 전주 이씨는 6,252명인 것으로 파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