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05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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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珠山戰鬪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주산면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을경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950년 7월 - 주산전투 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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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결 시기/일시 | 1950년 7월 - 주산전투 종결 |
발생|시작 장소 | 충청남도 보령시 주산면 |
성격 | 사건 |
관련 인물/단체 | 철도경찰대 |
[정의]
6.25전쟁 당시 충청남도 보령군 주산면에서 인민군과 벌인 전투.
[역사적 배경]
1948년 8월 15일 남한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고, 1948년 9월 9일 북한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다. 한반도에 두 개의 정부가 수립되면서 공식적인 분단의 길로 들어섰다. 남침의 기회를 노리던 북한은 한반도를 미국의 동북아시아 군사 방위선에서 제외한다는 미국의 애치슨 라인에 고무되어 1950년 6월 25일 기습적으로 새벽에 남침을 감행하였다. 무방비 상태였던 남한에서는 서울이 함락되었고 낙동강 전선까지 후퇴하게 되었다. 서울에서 후퇴하여 임시 수도가 대전에 마련되었으며, 금강 방어선이 구축되었다. 이어 부산으로 임시수도가 옮겨지고 낙동강 방어선이 구축되는 등 국군과 인민군의 전투는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경과]
한국전쟁 당시 보령 지역에 남하한 북한 인민군은 제6사단이었다. 경력이 많았던 6사단의 사단장은 팔로군 출신의 방호산이었다. 6사단은 1950년 6월 28일 김포 북방에서 한강으로 넘어왔고 29일에는 김포비행장, 7월 3일에는 인천, 7월 4일에는 영등포에 집결하여 대전과 부산을 따라 공격할 준비에 착수하였다. 7월 8일 천안을 점령한 후 군산, 전주, 순천, 진주, 부산의 진격로에 투입되어 충청남도 서해안 지역을 지나가게 되었다. 7월 12일에는 홍성을 통과하였고, 군산을 점령한 후 20일 전주를 공격하였다.
인민군 6사단을 저지하고 있던 국군 부대는 패전한 7사단이 유일하여 6사단은 계속 진격하여 23일에는 광주까지 점령하였다. 6사단이 홍성을 점령한 이후 13일 보령경찰서에 후퇴 명령이 내려져 경찰들은 배를 타고 군산으로 갔으나 군산의 해병대가 다시 장항으로 갈 것을 명령하여 14일 장항에 가서 다시 비인으로 가라는 헌병사령관의 명령을 받았다.
충청남도 서부 지역의 7개 경찰서 병력과 철도경찰대 병력이 비인에 집결하였다. 그리고 7월 15일 아침 “인민군이 보령 남포면 북정자 부근에서 목격되니 남하를 저지하라.”라는 명령이 경찰에 내려졌다. 결국 비인으로 출발한 경찰은 정철모 총경이 지휘하는 철도경찰대 75명을 선두로 오후 3시경 주산면 지서에 도착하여 인원 점검을 하던 중 인민군 공격을 받아 6명이 전사하고 10명이 포로가 되었다. 포로가 된 10명은 웅천 인민위원회에 인계되었고 결국 7월 27일 오후 2시 이어니재에서 총살을 당하였다.
[결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