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00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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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文學 |
영어공식명칭 | Literature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조상우 |
[정의]
충청남도 보령시에서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언어와 문자로 표현하는 예술 및 그 작품.
[보령의 한문학]
충청남도 보령시의 문학은 크게 조선 시대와 현대로 구분하여 파악할 수 있다. 보령에는 유교 유적으로 신도비, 중수기 등의 기록이 전하는데, 이들도 큰 범주에서는 문학의 범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본격적인 문학은 개인 문집으로 한정할 필요가 있다. 보령에 전하는 개인 문집을 보면 다음과 같다.
『광헌시집』·『구촌집』·『금암유고』·『기죽당집』·『김선생우정집』·『난국재집』·『노오재집』·『노은유고』·『돈암이선생집』·『매곡고』·『매정고』·『병오일기』·『사가집』·『삼호당실기』·『삼희당선생집』·『석람시고』·『석루유고』·『성당집』·『소매유고』·『소산사집』·『소산시집』·『송암선생문고』·『숙재집』·『심당집』·『아계유고』·『옥담심공유고』·『옥산세고속록』·『옥서실기』·『우가헌유고』·『율재고』·『율재잡고』·『이재선생실기』·『인재집』·『장옥난고』·『정수재집』·『주계시집』·『추강집』·『토정유고』·『파산세고』·『한성재유고』·『홍경일기』 등 다양한 문집이 있다. 이 문집의 작가들은 조선 후기의 유명한 가문에 속해 있다. 위의 문집을 간행한 문중을 보면 다음과 같다. 괄호 안은 문집 수를 표시한다.
남포 백씨[9명의 문집을 엮은 『옥산세고속록』 외 5], 파평 윤씨[4명의 문집을 엮은 『파산세고』 외 2], 풍천 임씨[5], 한산 이씨[3], 서천 이씨[3], 밀양 박씨[2], 전주 이씨[2], 경주 이씨[2], 한양 조씨[2], 양주 조씨[2], 경주 김씨[2], 전주 유씨[2], 완산 이씨[1], 광산 김씨[1], 경주 정씨[1], 평산 신씨[1], 청송 심씨[1], 장수 황씨[1] 등이다.
문집을 가장 많이 남긴 집안은 남포 백씨이다. 남포 백씨 문중에는 9명의 문집을 하나로 엮은 『옥산세고속록(玉山世稿續錄)』을 발간했는데, 여기에 들어가지 않은 문집 5개가 더 있다. 남포 백씨와 비슷하게 문집 문집을 발간한 집안이 파평 윤씨이다. 파평 윤씨는 4명의 문집을 하나로 엮은 『파산세고』를 발간했는데 2명의 문집이 단독으로 존재하고 있다.
다음으로 많은 문집을 남긴 성씨는 풍천 임씨로 5명의 문집을 발간하고 있다. 다음은 보령과 관향이 가까운 성씨로 한산 이씨와 서천 이씨가 3명의 문집을 발간하고 있다. 밀양 박씨에서부터 장수 황씨까지는 한두 명의 문집을 발간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문집 가운데 문학사나 역사학에서 유명한 인물의 문집 몇 가지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1. 『파산세고(坡山世稿)』
『파산세고』는 전체 6책으로 구성되었다. 남포 백씨가 문중의 문집을 모은 것과 같다. 『파산세고』에는 파평 윤씨의 문집인 『견암유고(狷菴遺稿)』[윤념], 『과재유고(果齋遺稿)』[윤건오], 『화정유고(華汀遺稿)』[윤건오], 『지산유고(芝山遺稿)』[윤석기] 등이 있다.
2. 『홍경일기(洪京日記)』
윤석봉(尹錫鳳)[1842~1910]이 쓴 일기이다. 윤석봉의 자는 운서(雲瑞), 호는 삼희당(三希堂)이며, 본관은 파평이다.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나 중암(重庵) 김평묵(金平默)[1819~1891]에게 배우고 화서학파(華西學派)의 의리를 체득하였다. 『홍경일기』는 1책 필사본이다. 표제는 ‘홍경일기’이고 반초서체의 38쪽 분량이다. 『보령문화』 11집에 황의천(黃義千)이 소개하여 처음 알려졌다.
김광제(金光濟)[1866~1920]의 시집이다. 김광제의 초명은 홍제(弘濟, 洪濟), 자는 덕재(德在), 호는 동양자(東洋子), 시호(詩號)는 석람(石藍)이다. 보령시 웅천읍 평리 출생이다. 『석람시고』는 필사본으로 22면이고, 『석람고』는 필사본으로 47면이다. 김광제는 독립운동가로 유명하다.
4. 『아계유고(鵝溪遺稿)』
이산해(李山海)[1539~1609]의 문집이다. 이산해의 자는 여수(汝受), 호는 아계(鵝溪), 시호는 문충(文忠), 본관은 한산(韓山)이다. 『아계유고』는 기성록(箕城錄) 3권, 후집(後集) 1권, 잡저(雜著) 2권, 합 6권 3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5. 『석루유고(石樓遺稿)』
이경전(李慶全)[1567~1644]의 문집이다. 이경전의 자는 중집(仲集), 호는 석루(石樓), 본관은 한산이다. 아버지는 아계 이산해이다. 『석루유고』는 4권 4책의 목판본이며, 표제와 판심제(版心題)는 ‘석루집(石樓集)’이고, 권수제(卷首題)는 ‘석루유고(石樓遺稿)’이다.
6. 『토정유고(土亭遺稿)』
이지함(李之菡)[1517~1578]의 문집이다. 자는 형중(馨仲), 호는 토정(土亭), 본관은 한산이다. 보령시 청라면 출생이다. 1720년(숙종 46) 현손인 경주부윤 이정익(李禎翊)이 다시 정호(鄭澔)[1648~1736]의 서문과 권상하(權尙夏)[1641~1721]의 발문을 받아 문집을 간행하게 된 경위를 담은 지(識)를 붙여 임지인 경주에서 2권 1책의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옥산세고속록』은 『정재공유고(靜齋公遺稿)』[백유공], 『호군공유사(護軍公遺事)』[백인함], 『성재공유고(省齋公遺稿)』[백세영], 『구암공유고(久庵公遺稿)』[백윤철], 『매사공유고(梅史公遺稿)』[백지화], 『직하공유고(稷下公遺稿)』[백동현], 『국사공실기(菊史公實記)』[백태진], 『혜산공유고략(惠山公遺稿略)』[백규수], 『취송공침언(翠松公寢言)』[백낙철], 『봉림공실기(鳳林公實記)』[백남욱] 등 9명의 남포 백씨 문집을 엮은 것이다.
8. 『숙재집(肅齋集)』
조병덕(趙秉悳)[1800~1870]의 문집이다. 조병덕의 자는 유문(孺文), 호는 숙재(肅齋), 본관은 양주(楊州)이다. 매산(梅山) 홍직필(洪直弼)과 노주(老洲) 오희상(吳熙常)의 문인이다. 『숙재집』은 26권 1책으로, 뛰어난 낙론계(洛論系) 학자의 학맥과 교유 관계와 사상을 엿볼 수 있는 자료이다.
보령에 전하는 문집은 조선 중기에서 발간된 것이 있고, 21세기에도 여전히 문집을 발간하고 있으므로 한문학의 전통이 현대에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문중 사람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으므로 가능하였는데, 몇몇 뛰어난 조상이 있었음을 다른 성씨에게 알리고, 후손에게도 자긍심을 북돋게 하는 목적이 강하였다.
[보령의 현대문학]
보령의 현대 문학은 1950년대부터 활발하였다. 보령은 전술한 바와 같이 조선 후기 학자이자 문신인 토정 이지함을 비롯하여 아계 이산해 등 뛰어난 문인들을 배출하였다. 이와 못지않게 현대에도 많은 문인을 보령에서 배출하고 있다. 보령 지역 출신 문인 중 주요 인물로는 시에 백성남·임영조·홍완기·최문휘 등이 있다. 소설에는 1950년대 후반부터 이문희(李文熙)를 비롯하여 최상규(崔翔圭)·최진우(崔鎭宇)·이문구(李文求)·김성동(金聖東)·최시한(崔時漢)·이혜경(李惠敬)·김종광(金鍾光) 등이 있다. 평론가로는 신동욱·권영민이 있고, 수필가로 이병남이 있다. 보령의 지역 문인들은 향토 문학 단체를 결성하여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 단체를 보면 보령문학회[1999], 보령수필아카데미[2007], 한국문인협회 보령지부[2002], 한내문학회[1989], 여성문학 보령예지회[1985] 등이 있다. 보령의 대표적인 시인과 소설가 및 평론가를 예로 들어 보기로 한다.
1. 임영조(任永祚): 1943년 주산면 황률리에서 태어났다. 주산중학교를 졸업하고 명천동으로 이주하여 성장하였다.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1970년 『월간문학』 제6회 신인상으로 시 「출항」이 추천되었고, 1971년에는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목수(木手)의 노래」가 당선되었다. 제1회 서라벌문학상, 제38회 현대문학상, 제9회 소월시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한국시인협회 사무총장 및 상임위원장을 역임하였다. 시집으로는 『바람이 남긴 은어』, 『갈대는 배후가 없다』, 『흔들리는 보리밭』, 『귀로 웃는 집』 등이 있다.
2. 홍완기(洪完基): 1932년에 태어났다. 1959년 『사상계(思想界)』에 「초토(焦土)의 장(章)」, 「선(線)」으로 등단하였다. 1970년에 『술을 마시고 바위를 보면』의 시집을 냈으며, 1980년 『남한산광대놀이』, 1986년에 『얼굴』, 1998년 『추락하는 비상』, 『이미지로 있는 형상』 등의 시집을 냈다.
3. 이문구(李文求): 보령 출신의 대표적 작가이자 한국의 대표적 소설가이다. 1941년 보령시 대관동 관촌(冠村)에서 태어났고, 1963년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였다. 1966년 단편소설 『다갈라 불망비(不忘碑)』, 『백결(百結)』이 『현대문학』에 추천되면서 문단에 등단하였다. 『관촌수필 연작』, 『우리동네 연작』 등을 발표하면서 보령에 관한 글을 쓰고, 보령 지역 농민들의 애환을 글로 표현하였다. 이로 인해 한국문학작가상, 요산문학상, 농민문학상, 만해문학상 등을 받았다.
4. 김성동: 1947년 청라면에서 출생하여 2022년에 사망하였다. 보령의 유학자 집안에서 태어난 할아버지에게서 한학 수업을 받으며 성장했으나, 6·25전쟁을 겪으며 18세의 나이로 지효대선사의 상좌가 되었다. 서라벌고등학교를 중퇴한 후 1966년 입산하여 불문(佛門)에 들면서 문학의 터전을 닦았다. 1975년 『주간종교』의 종교 소설 현상 모집에 『목탁조』가 당선되었으나, 이 작품으로 인해 승적이 박탈되었다. 중편 『만다라』를 발표하여 『한국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문단에 나왔다. 이후 『엄마와 개구리』, 『가숙(假宿)의 땅』 등을 발표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현대불교문학상·신동엽문학상·이태준문학상·요산문학상 등을 받았다.
5. 최시한(崔時漢): 1952년 청소면 장곡리에서 태어났다. 서강대학교 국문과와 같은 대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1982년 『우리 세대의 문학』 1집에 「낙타의 겨울」을 발표하면서 등단하였다. 그 후 『식구들은 모두 무사했다』, 『음지 식물』 등을 펴냈고,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 같이 주로 청소년들의 갈등과 성장을 다룬 소설에서 뛰어난 성취를 보였다.
6. 권영민: 1948년 오천면 소성리에서 태어났다. 1971년에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평론 「Onomatopoeia의 문학적 한계성」이 당선되어 등단하였으며, 한국 문단 평론 분야의 권위자이다. 저서로는 『한국현대문학 비평사』, 『한국근대소설연구』, 『한국민족 문학론 연구』, 『월북문인 연구』, 『북한의 문학』 등이 있다. 두계학술상, 서울문화예술 평론상, 현대문학상 평론상 등을 수상하였고, 단국대학교와 서울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과 교수를 지냈다.
7. 신동욱(申東旭): 1932년 천북면에서 출생하였으며, 1960년 『현대문학』에 「마법과 미의 영역」, 「현대의 음성」 등이 추천되어 문단에 등단하였다. 주요 평론집으로 『한국현대문학론』, 『한국현대비평문학사』, 『우리 시대의 작가와 모순의 미학』, 『우리 이야기 문학의 아름다움』, 『문학의 비평적 해석』 등 많은 평론집을 출간하였다. 제1회 조연현문학상, 연대학술상 등을 받았다.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