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13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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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溫幸日記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역사/전통 시대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승은 |
[정의]
1750년(영조 26) 9월 12일부터 9월 17일까지 영조가 서울을 출발하여 충청남도 아산의 온양온천 이궁(離宮)에 이르기까지의 사실을 기록한 일기.
[개설]
『온행일기(溫幸日記)』는 영조(英祖)가 서울에서 충청남도 아산의 온양온천까지의 행차 중 각 지역에서의 의례, 상황 보고와 영조의 지시, 지방의 풍물과 온행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숙종에 대한 영조의 그리움을 담은 시와 신하들과 나눈 생생한 대화도 엿볼 수 있다.
[저자]
『온행일기』는 승정원(承政院)에서 간행하였다. 당시 배종(陪從)한 승정원 관원은 조명리(趙明履)·오언유(吳彦儒)·남태기(南泰耆)·황경원(黃景源)·남학로(南鶴老)·최태형(崔台衡)·송취행(宋聚行) 등이다.
[편찬/간행 경위]
『온행일기』 표지 우측 상단의 ‘건륭십오년승정원상을해개장((乾隆十五年承政院上乙亥改粧)’으로 보아, 1750년 승정원에서 편찬하여 올렸고 1755년 을해년[추정]에 표지를 바꾼 것으로 추정된다.
[형태/서지]
『온행일기』는 1책 24장의 필사본으로, 크기는 가로 29.8㎝, 세로 36.2㎝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영조는 피부 가려움증을 치료하고자 1750년 9월 12일 궁에서 나와 관왕묘(關王廟)를 참배한 후 서빙고(西氷庫)에서 배를 타고 서울에서 출발하였다. 그리고 과천(果川)·수원(水原)·직산(稷山)·진위(振威) 지역을 거쳐 16일 충청남도 아산의 온양행궁에 도착하였다. 영조는 1717년 숙종을 모시고 온양에 갔던 적이 있는데, 이번 행차에서 그때를 그리는 마음을 『온행일기』에 표현하였다. 영조는 과천과 진위에서는 동헌과 관아가 예전과 같은 것을 보고 지난날을 생각하고, 직산에서는 동헌 앞 영소정(靈沼亭)의 어제시(御製詩)를 보고 슬퍼하였다. 또한 영조는 자신의 행차가 추수와 맞물려 백성들에게 해를 끼칠까 걱정하여 지방관들에게도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고 자신을 맞이하거나 따라올 필요가 없다고 명하였다. 백성의 부담을 덜어 주고 선왕의 자취를 좇는 의미에서 행궁과 주정소의 집기도 수리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게 하였다. 이 밖에 『온행일기』에는 온행 중 영조가 지은 시와 신하들의 화답시 등이 실려 있다.
[의의와 평가]
온행은 조선 국왕들의 상례(常例)였으나, 실록과 『승정원일기』에서는 그 구체적인 정황을 찾아보기 어렵다. 『온행일기』 또한 해당 일자가 『승정원일기』에 빠진 기록이 많으므로 이를 통해 온행 과정을 생생하게 재구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