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23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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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祈雨祭 |
영어의미역 | A Shamanist Service to Pray for Rain |
이칭/별칭 | 무제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의례/제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
집필자 | 김재호 |
[정의]
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가뭄이 들었을 때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며 올리는 의례.
[개설]
기우제는 가뭄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주술적 방법을 동원하여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며 지내는 제의 행위이며, 이를 흔히 ‘무제’라고도 한다. 농사를 비롯하여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일정 기간 이상 비가 내리지 않을 경우 피해가 막심하다. 전통적으로는 벼농사와 관련하여 기우제를 많이 지냈는데, 그래서 모심기가 끝나는 6월 하지가 지나고도 비가 오지 않을 경우 기우제를 지냈다. 방식은 비가 올 수 있는 각종 주술을 비롯한 전통 지식들을 총동원하는 것으로 지역에 따라 또는 시대에 따라 다소 차이를 보인다. 안동 지역에서 주로 행한 방법은 영험한 산이나 하천 혹은 우물을 제사 터로 삼아 불을 피우거나 개의 피를 뿌리고 제사를 지내는 것이었다.
[연원 및 변천]
안동의 기우제에 관한 17세기 초기의 기록은 『영가지(永嘉誌)』(1602)의 산천조에서 볼 수 있다. 이에 의하면, 기우제 터는 와룡산 정상, 선어대 용단, 용정, 마당정(馬堂井), 조골산 기우단, 문필산(갈라산) 기우단, 일직면 귀미의 공산당(公山堂)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들은 고을 단위에서 지내던 기우제 터라고 할 수 있으며, 이 외에 마을 단위별로 비는 곳이 별도로 있었다. 용계동의 도연폭포, 북후면 옹천동의 용바우, 서후면 성곡동의 용우물, 태장동의 천등산 꼭대기, 남선면 신석1동 납뜰의 뒷산 꼭대기 등이 그런 곳으로 최근까지 기우제를 지냈던 것으로 전해진다.
[신당/신체의 형태]
기우제를 지내는 신당이나 신체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며, 간혹 유명한 곳은 기우제단이 있는 곳이 있다. 선어대 용단·조골산 기우단·문필산 기우단 등이 바로 그 예이다.
[절차]
먼저 주술적인 방법을 행하고 뒤이어 유교식 제사를 지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안동 지역에서는 산 정상에 불을 지른다거나, 개를 잡아 생피를 폭포 근처에 뿌리는 등의 주술적인 방법이 확인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마을의 유지 등을 제관으로 하여 제사를 지내는 복합적인 방법을 동원하였다.
남선면 신석1동 납뜰마을의 사례를 들어보면, 제관이 청년 4~5명과 여자 6~7명과 함께 오후 5~6시경 산으로 올라간다. 남자들은 먼저 제수를 지게에 지고 가서 제장 옆에 불을 지핀다. 이들이 제장에 도착하면 청년들은 생솔가지를 모아 불을 피워서 연기를 낸다. 이때 인근 마을 주민들은 이 산 주변에 위치한 약물탕덤, 뒷산 대배기, 선골, 노적산 꼭대기 등에서 불을 피워 연기를 낸다. 왜냐하면 연기가 올라가서 구름이 되어 비가 내린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이 드리는 정성 때문에 옥황상제께서 비를 뿌려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끔 한다고도 한다.
그 동안 여자들은 제수를 장만하고, 제의는 새벽 1시경 시작한다. 제관은 먼저 술잔을 따라 강신하고 또 한 잔을 붓고 세 번 절한다. 이것은 원칙적으로 아홉 번 행하던 것을 간소화하여 세 번 행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때 옆에 있는 여성들은 “비가 오도록 해주이소”라고 말하면서 빈다. 무제를 시작할 때 남성들은 연기가 더 많이 피어오르도록 하기 위해 불을 더 많이 지른다. 이때 주위의 산봉우리에서도 더 크게 불을 지른다.
[축문]
기우제의 효과가 미치는 지역이 넓을수록 주술적인 방법과 유교식의 제사가 더욱 다양하게 결합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축문은 옛 성현들의 문집에 남아 있는 경우가 더러 있다. 대표적인 예로 『정와선생문집(訂窩先生文集)』이나 『수산문집(秀山文集)』의 「영검산기우문(靈劒山祈雨文)」을 들 수 있다.
[현황]
기우제는 산업화 시기 이전만 하더라도 많이 행해졌다. 하지만 수리시설의 확충과 지하수 개발 그리고 모터 펌프의 보급과 같은 장비의 현대화가 빠르게 이루어진 오늘날에는 거의 지내는 경우가 없다. 이제 기우제는 연세 많으신 어른들의 기억 속에만 존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