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22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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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民俗 |
영어의미역 | Ethnic Customs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
집필자 | 임재해 |
[정의]
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민간에 전승되고 있는 생활 풍속.
[개설]
안동은 조선시대에 유교문화가 강성했던 지역으로 반촌과 문중 조직, 서원 등을 통해서 양반문화와 선비문화가 뿌리를 깊이 내린 곳이다. 민속은 민촌의 마을 공동체와 그 주체인 민중을 중심으로 전승되는 자생적인 전통문화이자 민주적인 생산문화로서, 양반들의 유교문화와 맞서는 관계에 있다. 그러므로 유교문화가 발전한 만큼 상대적으로 이와 맞서는 민속문화도 강성하여 전국적으로 주목할 만한 민속들인 하회별신굿탈놀이, 금소 동채싸움, 안동놋다리밟기, 성주신앙의 본향 등으로 잘 전승되고 있다.
[특징]
1. 역사적 특징
안동은 고려시대에 들어오면서 민족사의 전면으로 떠오른다. 고려 초에는 고창(高昌) 전투에서 왕건을 도와 견훤을 패퇴시키고 고려 통일의 기틀을 마련한 까닭에 ‘안동’이라는 지명을 얻게 된다. 견훤을 물리친 고창 전투와 관련하여 ‘동채싸움’이라는 독특한 남성들의 민속놀이가 자리 잡는다. 고려 말에는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으로 몽진을 와서 두 달 가까이 머문다. 이때 안동부의 여성들이 왕비인 노국공주 맞이로 놋다리밟기를 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안동의 중요한 민속들은 고려사와 만나면서 지역의 공동체문화로 전승된다.
2. 지역적 특징
안동은 낙동강 중상류의 태백산맥과 소백산맥 사이에 있다. 앞쪽으로 큰 강을 끼고 뒤로 산줄기가 에워싸고 있어서 농경 사회에 적절한 입지를 갖추었다. 상류처럼 산세가 높고 강이 급류를 이루지 않으며, 하류처럼 범람의 위험이 크거나 강이 넓어 교량 설치가 어렵지도 않다.
낙동강 본류와 반변천이 안동시가지에서 합류하여 비로소 낙동강의 위용을 드러내고 있는데, 강을 이용하여 적절히 물을 가두거나 끌어들여 관개로 이용할 수 있는 지류들이 많다. 또한 풍산들처럼 제법 넓은 들도 갖추어져 있어서 일찍이 이앙법이 발달하여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벼농사를 통한 경제적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그러나 안동은 낙동강을 사이로 수많은 산세들이 서로 마주하며 조응하고 있기 때문에 풍산들을 제외한 넓은 들이 거의 없다. 관개를 이용한 논 외에는 산기슭의 밭이 대부분이어서 자연히 밭작물과 보리농사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영가지(永嘉誌)』를 보면 안동부(安東府) 내는 물론 부의 남쪽과 서쪽에도 논인 수전(水田)이 적고 밭인 한전(旱田)이 많다고 하였으며, 토질도 콩과 조·뽕·마(麻)를 경작하는데 적합하다고 하였다. 다만 풍산현만 논과 밭이 반반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안동 지역은 논농사에 비해 밭농사의 비중이 더 높았다.
안동에서는 15세기 말부터 이앙법으로 벼농사의 경제성을 살리긴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밭작물이 주곡 구실을 하였다. 따라서 사실상 주곡은 벼가 아니라 보리였으며, 조와 콩에 적지 않게 의존했다. 따라서 안동 선비들을 일러 ‘경상도 보리 문둥이’라 일컬었다. 어떤 마을의 처녀들은 쌀 한 말을 먹지 못하고 시집을 갔다고 한다. 자연히 보리농사와 관련된 단오 민속이 드센 반면에 벼농사와 관련된 한가위 민속은 상대적으로 약하다. 대보름 때 수수깡으로 오곡을 만들어 장대 위에 높이 매달아 두고 풍년을 기원하는 내농작 의식을 ‘보리 만들기’라고 하였다. 또한 놋다리밟기도 보리밭 밟기의 전통과 연관된 것으로 추론된다.
3. 문화적 특징
18세기 이후에는 이앙법이 다른 지역에도 전면 보급되면서 평야지대로 농업의 중심지가 이동되는 동시에 상업이 발달되면서 안동은 더 이상 경제적 풍요를 누리기 어렵게 되었다. 그 결과 조선 후기 안동 양반들은 경제력의 약화와 더불어 정치적 몰락도 겪게 된다.
따라서 정치적 쇠퇴에 따른 신분 몰락을 막기 위하여 글을 읽고 문집을 간행하는 학문 활동에 진력하며, 문중 조직과 혼반 형성 등으로 혈연적 연대에 의한 신분 강화가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어느 고장보다 동성 반촌이 많고 문벌 의식이 강하며 반상을 중요하게 따지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전통문화가 잘 유지되었다.
안동의 민속문화가 다른 고장에 비하여 독창성을 지니며 전승되는 것은 이러한 자연환경과 역사적 상황, 반촌문화의 전통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의식주생활은 자연환경과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동채싸움이나 놋다리밟기와 같은 공동체놀이는 역사적 상황과 연관되어 전승력을 지니게 되었으며, 하회탈춤은 양반들의 반촌문화에 맞서서 창출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의식주 생활 민속]
안동의 일상적인 민속의 특징은 의식주 생활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안동포가 지역 특산물이고, 안동식혜와 안동간고등어가 식문화의 특징을 이루며, 서원과 재사, 까치구멍집 등 고건축물이 이름났다.
1. 의생활
안동은 길쌈의 고장이다. 안동포가 특산이며 아직도 삼을 갈아서 길쌈을 하고 삼베를 짠다. 안동포가 유명한 데에는 세 가지 원인이 있다. 하나는 안동포를 생산할 수 있는 자연지리적 환경 조건이고, 둘은 안동포로 베를 짜고 옷을 짓는 주체로서 안동 부녀들의 길쌈 솜씨이며, 셋은 삼베옷을 즐겨 입는 실제 의생활의 양식이다. 아무리 길쌈 솜씨가 좋아도 질 좋은 삼이 생산되지 않으면 고운 베를 짤 수 없고, 아무리 좋은 삼이 생산되어도 길쌈 솜씨가 없으면 안동포와 같은 품질 좋은 삼베가 생산되지 않는다.
안동의 기후는 고온다습할 뿐 아니라 작은 분지여서 바람도 순조로워 품질 좋은 삼을 재배하기에 적절하다. 안동포가 명품인 것은 삼의 품질과 더불어 이 지역 부녀들의 길쌈 솜씨가 뛰어났기 때문이다. 길쌈 솜씨는 부녀의 사람됨을 가늠하는 자질이었으며 부덕의 하나로 평가될 정도였다. 따라서 음식 솜씨나 바느질 솜씨보다 길쌈 잘 하는 며느리를 으뜸으로 꼽았다.
그리고 양반들의 의례복에는 삼베를 주로 사용하였다. 상례나 제례, 기제사와 묘제 때는 물론 서원 향사와 유림들의 각종 모임에는 도포를 갖추어야 참석할 수 있는데, 여름 도포는 고운 삼베를 쓰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최근까지 도포는 혼수품으로 큰 비중을 차지할 정도로 고급 삼베의 수요를 창출했다.
2. 식생활
안동의 식문화로서의 특징은 쌀이 귀해서 밭작물 중심의 잡곡밥을 주로 먹었으며, 바다가 멀어서 어패류보다 나물을 많이 먹었다. 평소에 쌀은 ‘웁쌀’이라 하여 어른들 밥상을 차리는 데에만 요긴하게 쓰였으며, 제사나 명절이 아니면 쌀밥 구경을 하기 어려웠다. 바다가 멀고 해산물 공급이 순조롭지 않기 때문에 젓갈이나 명태 등 오래 갈무리할 수 있는 해산물이 주를 이루었다. 이외에, 안동에서 자급하는 찬거리는 주로 밭작물을 통해서 수확한 콩과 채소로 장만했다. 호박순이나 부추, 우거지 등을 날콩가루를 묻혀서 익힌 다음 간장이나 된장으로 간을 하고 양념을 한 무침나물이 발달했다.
해산물은 건어물이나 젓갈류, 그리고 소금을 쳐서 간잽이로 오래 보관해 두고 먹을 수 있도록 했다. 최근 ‘안동간고등어’가 상품화된 것도 이러한 식문화의 전통에서 비롯되었다. 맵고 짠 것이 안동 음식의 특징인데, 명태를 양념장으로 맵게 구워 반찬으로 올리는 것이나 감주와 달리 고춧가루 우린 물을 사용하는 ‘안동식혜’가 그러한 보기이다. 헛제사밥은 안동의 제사문화와 관련하여 형성된 것이다.
3. 주생활
안동 지역은 목조건축 문화재의 보고이다. 전국적으로 고건축 문화재가 가장 많은 지역인데, 대부분 목조로 된 나무집이다. 질적으로 훌륭한 건축물이 집중되어 있으며,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인 봉정사 극락전도 안동에 있다. 따라서 안동 지역은 건축사 박물관이자 건축학도들의 답사 일번지로 알려져 있다. 문화재급 고건축물이 많은 것은 건축자재인 소나무가 옛날부터 유명했고, 집을 잘 짓는 전설적인 목수들이 있었으며, 종가와 서원, 정자, 재사 등 건축물의 수요가 많은 문화 풍토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안동은 ‘집의 신’이라고 할 수 있는 성주신앙의 본향답게 건축 문화재가 풍부하다.
안동에는 서원과 재사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서원이 유교문화의 선비정신을 반영한 것이라면, 재사는 조상 묘역을 관리하고 묘사를 올리는 것으로서 조상 숭배의 효사상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민가로는 흔히 까치구멍집이라고 하는 여섯 칸 겹집 형태가 특징을 이루고 있다. 추운 기후 조건이나 밭작물 중심의 소규모 노동 형태, 그리고 산간 지방의 짐승의 피해 등을 고려해서 지은 것이 까치구멍집이다. 태백산 지역의 자연 풍토에 적응하기 위해서 홑집인 중부형 민가를 원형으로, 옥내 작업을 위한 봉당, 농우를 위한 외양간, 곡식을 저장하기 위한 도장 등을 옥내로 편입시켜 최소한의 겹집 형태로 구성한 가옥 양식이다.
[지역 공동체 민속]
안동의 민속 가운데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하회별신굿놀이, 성주풀이, 동채싸움, 놋다리밟기 등이 있다. 하회별신굿놀이는 대학가에서의 탈춤 붐과 함께 젊은 지식층에 널리 알려진 민속이며, 성주풀이는 성주를 드리는 사람들이나 성주굿을 담당하는 무당들에 의해 널리 전승되는 민속이다. 민속신앙은 동신을 섬기는 마을 단위의 별신굿과 집안신을 섬기는 집안 단위의 성주굿으로 대립적 성격을 보인다면, 동채싸움과 놋다리밟기는 해마다 같은 시기에 행해졌던 세시풍속의 하나로서 전승 주체가 남녀의 성별 대립을 보이고 있다.
1. 하회별신굿탈놀이
국가무형문화재 제69호로 지정된 하회별신굿탈놀이는 농촌 별신굿의 전형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문화사적 의의를 지니고 있으며, 그 일부인 하회탈춤은 우리 민속극의 가장 고형이라는 점에서 연극사의 전개 과정을 살피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쓰이는 하회탈은 국보 제121호로 지정될 정도로 그 예술적 가치가 널리 인정되고 있는 세계적인 탈이다.
따라서 하회별신굿탈놀이를 통해서 한국 무교사(巫敎史) 서술은 물론 우리 미술사 및 연극사의 해명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며, 축제 형식의 대동굿놀이는 상고시대 이전부터 전승되어 오던 국중대회의 맥을 그대로 이어주고 있어 주목된다. 그리고 양반과 선비는 물론 승려들까지 포함하여 당대의 지배 세력들을 풍자하는 민중의식의 성장된 모습을 극화해 주고 있다는 점도 민중사의 관점에서 당시의 사회사를 이해하는 긴요한 민속문화이다.
2. 성주풀이
하회별신굿이 마을굿으로서 동신을 섬기는 제의라면, 성주풀이는 집안에서 섬기는 가신(家神)신앙의 대표격인 성주신앙과 연관되어 있다. 특히 성주풀이의 내용은 성주신앙의 본향이 안동임을 노래하고 있어 주목된다. 성주풀이의 서두에 보면 성주의 근본을 풀어나가는 대목이 있다.
“성주의 본향이 어드메냐/ 경상도 안동땅 제비원이 본일레라”고 하여, 안동 제비원이 성주신앙의 본산지임을 밝히고 있다. 성주풀이의 이러한 사설은 황해도에서 제주도에 이르기까지 한결같다. 전국 어디에서나 성주굿을 드릴 때에는 성주풀이를 하고 그 때마다 성주의 본향 안동을 노래로 확인하고 밝히는 것이다. 따라서 안동은 민속신앙의 한 중심지로서 종교적 성지로 인식되고 있다.
하회별신굿과 성주굿은 각기 마을굿과 집안굿으로서 무교적인 세계관에 입각한 전통으로서 우리 민족신앙의 한 전형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안동의 민속은 국중대회의 나라굿이 지닌 축제형식의 종교 양식을 마을굿으로 이어 오면서, 오늘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대동성과 공동체 의식을 다지는 새로운 민족문화의 창조에 튼튼한 문화적 뿌리가 되고 있다.
안동에서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이 가능한 것도 이러한 전통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마을 단위의 별신굿 전통과 달리 집을 짓고 가정을 이루며 살아가는 최소 단위의 집안굿에 해당되는 것이 성주굿이다. 기본적인 삶의 터전을 가꾸는 성주굿의 전통은 전국적으로 일반화되어 있는데, 그 신앙의 성지가 안동 지역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관심을 끈다.
3. 동채싸움
국가무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된 동채싸움은 남성 중심의 패놀이 양식을 이루고 있어, 민속놀이의 한 전범이 되고 있다. 정월 보름에 동제를 마치면 고장 사람들끼리 동·서부로 패를 나누어서 동채싸움 준비를 한다. 당일이 되면 신명을 돋우는 풍물의 가락에 맞추어 머릿꾼들의 몸싸움과 동채꾼들의 동채싸움이 격렬하게 벌어진다.
동채싸움을 하지 않으면 마을에 재앙이 발생한다든가, 또는 이기는 쪽이 풍년이 든다든가 하는 주술적 의미 외에, 동부·서부 동채의 결합을 통한 모의적 성행위의 실현으로 풍요다산을 기원하는 풍농굿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남성들의 협동 및 전투적 성격을 기초로 승부를 겨냥하는 놀이여서 지배층의 관념적인 인문주의 문화에 대립되는 민속이자 일과 더불어 살아가는 민중적 삶의 역동성을 구김살 없이 발휘하는 민속이라 하겠다.
4. 놋다리밟기
놋다리밟기는 남성들의 동채싸움과 대립되는 여성들의 패놀이이다. 동부·서부로 패를 갈라서 제각기 춤놀이도 하고, 서로 길뺏기를 하는 겨루기 놀이이기도 한다. 둥둥데미나 실감기라고 하는 강강술래 춤사위와 비슷한 원무와 줄놋다리라고 하는 길굿이 놀이가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그 때마다 놀이의 내용에 알맞는 노래를 부른다.
“무슨 갓을 쓰고 왔노/ 통영갓을 쓰고 왔다// 무슨 도포 입고 왔노/ 직령도포 입고 왔다// 무슨 말을 타고 왔노/ 백대마를 타고 왔다”라는 노래의 사설과 놀이 양식으로 보아 여성이 지모신(地母神)으로서 일년생산신인 남성을 맞이하는 유감주술적 성격이 짙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이 놀이 또한 동채싸움과 같은 풍농기원의 제의적 기능을 지니며, 문밖출입이 통제되어 있는 전통 사회의 아낙네들이 신명풀이를 하면서 지역적 유대를 다지는 사회적 통합 기능과 인간적 감흥을 발산하는 축제적 기능을 함께 지녔다고 할 수 있다.
[비교로 본 지역민속]
지역민속으로서 특징은 다른 지역민속과 비교해 보면 더 잘 드러난다. 하회별신굿탈놀이는 탈춤과 비교할 만하고, 놋다리밟기는 강강술래와, 동채싸움은 고싸움과 비교할 만하다. 하회탈춤은 서낭신을 섬기는 별신굿의 일환으로 전승될 뿐 아니라 전승 공동체가 하회마을로 분명하게 남아 있으며, 고려 중기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탈이 고스란히 전승되고 있다.
특히 두드러진 것은 탈이다. 탈은 나무로 제작된 데다가 그 좌우 부대칭의 변증법적 조형성이 뛰어나다. 턱이 실제로 움직이도록 하거나 입체적 조형으로 움직이는 데 따라 표정이 변한다. 탈을 태우지 않고 잘 보존하여 고형의 탈이 그대로 전승되는 까닭에 국보로 지정되었을 뿐 아니라, 민족문화의 전통을 상징하는 한국의 얼굴 구실을 하고 있다.
초파일이나 단오에 연행되는 다른 지역 탈춤과 달리, 하회탈춤은 별신굿의 일환으로 정월 초하루부터 대보름까지 약 보름 동안 연행된다. 호남 지역 마을굿처럼 집돌이 풍물굿 구실을 겸하여 전승되는데 이웃마을까지 가서 탈놀이를 놀았다. 극적 내용을 살펴보면 다른 지역 탈춤에 비하여 양반과 선비가 대립을 이루며, 양반이 하인 초랭이로부터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양반과 선비가 유난히 큰 비중을 이루는 것도 반촌마을에서 전승되는 탈춤의 특징이다. 부부 갈등을 다룬 할미마당에서는 첩이 등장하지 않고 청어와 같은 음식을 두고 영감의 가부장적 횡포를 풍자하는 것도 특징이다. 소를 잡는 백정마당과 각시를 총각에게 시집보내는 혼례마당·신방마당은 하회탈춤만의 색다름이다. 처녀 서낭신을 위로하는 별신굿을 하는 까닭에 제물로 소도 잡고 서낭신을 시집보내는 마당이 형성된 것으로 추론된다.
동채싸움은 안동 지역 공동체놀이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것으로, 특히 호남 지역의 고싸움놀이와 대비된다. 호남 지역 고싸움이 줄당기기놀이의 발전 형태로서 평야 지역의 풍부한 벼농사와 짚문화를 반영한 남성놀이라 한다면, 동채싸움은 나무로 거대한 동채를 만들어 노는 놀이로서 상대적으로 짚보다 나무가 흔한 산간 지역 밭농사 문화를 반영한 남성놀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벼농사 지역에서는 줄당기기도 드세고 그것이 다시 고싸움으로 발전한 데 비하여, 밭농사 지역에서는 줄당기기도 그렇게 드세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남성들의 동채싸움이 별도로 발생하여 전승된다.
여성들의 놋다리밟기도 호남 지역 강강술래와 견주어볼 만한 특징을 지닌다. 강강술래가 벼농사 지역답게 8월 한가위를 중심으로 전승되는 원무 중심의 여성놀이인데 비하여, 놋다리밟기는 보리농사 지역답게 정월 대보름에 전승되는 밟아가기 중심의 여성놀이에 해당된다. 강강술래가 흥겨운 춤놀이 중심이라면, 놋다리밟기는 공주를 뽑아서 사설을 묻고 답하는 극놀이 중심이다.
강강술래가 임진왜란과 연관되어 전승되는 반면에, 놋다리밟기는 공민왕의 안동 몽진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연관되어 전승된다. 그러므로 지역사회 민속문화의 특징은 자연환경과 생업, 공동체굿과 같은 제의문화, 그리고 역사적 사건 등과 밀접한 연관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안동 지역 민속은 주로 고려시대에 기원된 것이 전승된다. 안동이 고려시대에 민족사의 전면에 떠오른 사실과 만난다. 안동 지역 민속은 남성들이 동채싸움을 하면 여성들은 놋다리밟기를 한다. 남녀 민속이 성별에 따라 특별히 치우치지 않고 모두 대단하다. 하회별신굿탈놀이는 지역적으로 전승되는 것이면서도 마을 단위로 행하는 열린 공간의 전통이라면, 성주굿은 전국적으로 전승되는 것이면서도 집안 단위로 전승되는 닫힌 공간의 전통이다.
마을굿과 집안굿의 양식인 민속신앙의 두 갈래가 모두 안동 지역에 잘 전승되고 있다. 특히 안동은 성주신앙의 본향으로서 민족종교의 성지 구실을 할 뿐만 아니라, 농촌별신굿의 전형이 남아 있다. 가장 오래된 탈과 탈춤은 물론, 남녀 대동놀이인 동채싸움과 놋다리밟기가 전승되고 있어서 한국 민속학의 핵심 현장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