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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국가가 위급할 때 백성이 스스로 조직했던 자위군. 의병이란 나라 안에 위급한 일이 발생했을 때 국가의 명령이나 징발을 기다리지 않고 자원 종군하는 민군(民軍)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의병의 전통은 이미 삼국시대부터 비롯되었으며,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쳐 조선 말기에까지 이르렀다. 특히 조선 말기의 의병은 항일 독립군의 모태가 되었다. 이러한 의병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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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경기도 용인·광주·양지·죽산·양성 일대에서 활동한 의병진. 경기도 용인 출신의 의병장 이익삼은 1907년 7월 헤이그 밀사 사건으로 고종이 강제 퇴위당하고 ‘정미조약’이 체결되면서 8월에 군대가 해산되자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의병을 일으켰다. 이익삼 의병부대는 주로 유격전으로 일제와 전투를 벌였으며, 그 밖에 일진회 등 친일파를 처단하거나, 빈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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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을미사변을 계기로 경기도 용인 지역에 일어났던 의병 항쟁. 일본은 1894년 동학농민전쟁이 일어나자 이를 계기로 청일전쟁을 도발하면서 군사적 압박을 가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갑오개혁을 추진하면서 내정간섭을 감행하는 양면 전략으로 한국 침략을 강화하였다. 즉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화하기 위해서 침략을 강화하자 극동에 진출해 있던 러시아를 비롯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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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을사조약을 계기로 경기도 용인 지역에 일어났던 의병 항쟁. 1904년 2월, 일본은 러일전쟁을 일으키고, 한일의정서를 강제 체결시켰으며, 5월 말에는 제1차 한일협약을 체결하였다. 그리고 1905년 들어 일본은 청과의 봉천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자 한국의 식민지화를 노골화시켜 11월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한국에 파견하여 을사조약을 체결하였다. 을사조약은 한국의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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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1월 경기도 이천의 백현에서 이천 의병과 일본군 수비대간에 벌어진 전투. 1895년 음력 8월 20일 일본 공사관의 주도로 자행된 명성황후 시해 사건인 을미사변을 기화로 조선의 각계각층에서 반일 기운이 고조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년 11월 15일 단발령이 공포되자 반일 감정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갔고, 각처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서울에서 가까운 이천에서도 의병이 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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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에서 1945년에 이르기까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 통치 시기 경기도 용인의 역사. 경기도 용인 지역은 조선시대부터 서울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로서 중앙의 정치적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지역이었다. 따라서 개항기와 일제강점기에는 국권 회복을 위한 항일 의병 운동, 물산 장려 운동 등과 같은 반일 민족 운동이나 소년 운동, 청년 운동 등과 같은 반봉건적 근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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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일부터 약 2개월 동안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전개된 독립 만세 운동.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과 식민지 정책에 대한 저항으로 항일 사상이 용인 지역에서 높아져 자주 독립을 바라는 민중들의 바람이 높아졌다. 또한 1919년 1월에 고종 황제가 갑자기 승하하자 일본인들이 독살하였다는 소문이 퍼져 민중들이 분노하였다. 또한 일본 유학생들이 2·8독립선언을 하였고 이 사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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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서 일어난 3·1운동. 1910년대 용인 지역 농민들은 일제의 강압적인 무단 통치와 열악한 사회 경제적 상황에 처해 있었다. 용인 지역 3·1운동은 이러한 농민들의 불만과 저항 의식이 독립 선언을 계기로 폭발하여 1919년 3월 말부터 4월 초에 걸쳐 발생하였다. 기흥면 시위운동은 3월 30일 김구식(金九植)과 김혁(金爀)이 주도한 시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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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월곡마을에서 일어난 3·1운동. 1910년대 용인 지역 농민들은 일제의 강압적인 무단 통치와 열악한 사회 경제적 상황에 빠져 있었다. 남사면 시위운동은 이러한 농민들의 불만과 저항 의식이 독립 선언을 계기로 폭발한 것이다. 특히 굴암사 승려들이 배포한 「독립선언문」이 남사면 월곡마을에 전해지면서 시위 운동이 촉발되었다. 1919년 3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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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구 내사면)에서 일어난 3·1운동. 용인 지역 3·1운동은 1919년 3월 말부터 4월 초에 걸쳐 각 지역에서 발생하였다. 내사면에서는 3월 28일 대대리, 3월 29일 남곡리, 4월 2일 송문리에서 각각 시위가 일어났는데, 가장 대표적인 시위는 3월 29일 천주교인들이 주도한 남곡리 시위였다. 1919년 3월 28일 포곡면에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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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경기도 용인군 수여면에서 일어난 3·1운동 시위. 1910년대 용인 지역 농민들은 일제의 강압적인 무단 통치와 열악한 사회 경제적 상황에 처해 있었다. 수여면 시위운동은 이러한 농민들의 불만과 저항 의식이 독립 선언을 계기로 폭발한 것이다. 3월 24일 김량장공립보통학교 학생 30여 명이 졸업식 이후 김량장 시장에서 만세시위를 벌였다. 이 시위는 수여면 주민들의 시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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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경기도 용인군 수지면에서 일어난 3·1운동 시위. 1910년대 용인 지역 농민들은 일제의 강압적인 무단 통치와 열악한 사회 경제적 상황에 처해 있었다. 수지면 시위운동은 이러한 농민들의 불만과 저항 의식이 독립 선언을 계기로 폭발한 것이다. 3월 29일 고기리 구장 이덕균은 동리 주민 100여 명을 규합하여 시위에 나섰다. 시위가 전개되는 동안 동천리 주민 200여 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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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구 외사면)에서 일어난 3·1운동. 1910년대 용인 지역 농민들은 일제의 강압적인 무단 통치와 열악한 사회 경제적 상황에 처해 있었다. 외사면 시위운동은 이러한 농민들의 불만과 저항 의식이 독립 선언을 계기로 폭발한 것이다. 원삼면 시위운동 참가자 색출을 명목으로 일제가 주민들에 대한 탄압을 가하자 3월 31일 원삼면에서 장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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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에서 일어난 3·1운동. 1910년대 용인 지역 농민들은 일제의 강압적인 무단 통치와 열악한 사회 경제적 상황에 처해 있었다. 원삼면 시위운동은 이러한 농민들의 불만과 저항 의식이 독립 선언을 계기로 폭발한 것이다. 2·8독립선언식에 참여하였던 오의선(吳義善)과 교원 양성소에 다니던 이봉현(李鳳鉉) 등이 고향으로 내려와 황경준(黃敬俊), 최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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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구성동(구 읍삼면)에서 일어난 3·1운동. 1910년대 용인 지역 농민들은 일제의 강압적인 무단 통치와 열악한 사회 경제적 상황에 처해 있었다. 읍삼면 시위운동은 이러한 농민들의 불만과 저항 의식이 독립 선언을 계기로 폭발한 것이다. 용인 각 지역으로 시위가 확산되는 가운데 1919년 3월 25일과 30일에 읍삽면에서 격렬한 시위가 일어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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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당시 이동면]에서 일어난 3·1운동. 1910년대 용인 지역 농민들은 일제의 강압적인 무단 통치와 열악한 사회 경제적 상황에 처해 있었다. 이동면 시위운동은 이러한 농민들의 불만과 저항 의식이 독립 선언을 계기로 폭발한 것이다. 묵리의 굴암사 주지 원공은 서울에서 만세 시위를 직접 목격하고 3월 20일 굴암사로 돌아와 승려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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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구 포곡면)에서 일어난 3·1운동. 1910년대 용인 지역 농민들은 일제의 강압적인 무단 통치와 열악한 사회 경제적 상황에 처해 있었다. 포곡면 시위운동은 이러한 농민들의 불만과 저항 의식이 독립선언을 계기로 폭발한 것이다. 3월 28일 모현면[현 모현읍] 초부리의 시위가 포곡면으로까지 확산되었다. 이에 삼계리의 권종묵은 주민 200여 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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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부터 경기도 용인 지역에 실시되었던 양전 사업. 1897년 2월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에서 환궁한 후 칭제건원(稱帝建元)을 추진하여 그 해 8월 연호를 광무(光武)로 고쳤으며, 10월 12일 황제 즉위식을 올림으로써 대한제국(大韓帝國)이 성립되었다. 대한제국 정부는 부국 강병책의 일환으로 이른바 ‘광무 개혁(光武改革)’을 추진하게 되었다. 그 가운데 토지와 농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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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실시된 일제의 토지 소유권 조사사업. 일제는 러일전쟁 이후 본격적으로 조선의 식민지화를 추진하면서 1906년 「토지가옥증명규칙」, 1908년 「토지가옥소유권 증명규칙」 제정 등 토지 침탈을 위한 각종 제도적 정비를 단행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만으로는 완전한 의미의 토지 소유권을 보장하고 토지를 상품화 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소유권을 보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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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기도 용인에서 정규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사회 교육 운동. 야학 활동은 일제강점기에 활발하게 이루어졌는데, 사설 야학과 관립 야학이 있었다. 관립 야학은 행정 당국이 일본어 보급을 목적으로 공립 보통학교의 부수 사업으로 운영하였다. 사설 야학은 노동자, 농민, 부녀자 등 소외 계층을 위한 농촌 계몽 운동 성격의 교육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용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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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일어났던 청년들의 사회 운동. 1920년대 청년운동은 3·1운동 이후 대중운동이나 사회운동이 전국적으로 조직화되는 흐름 속에서 출현하였다. 한일합방 이후 일제에 의해 국내의 계몽운동과 교육·언론 활동이 탄압받던 분위기와 달리 3·1운동 이후에는 국내 보통학교 수가 증가하고 야학 등의 교육운동이 활발히 전개되는 가운데 각지의 청년 단체들이 결성되는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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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민족 자본을 육성하기 위해 벌인 국권 회복 운동. 물산장려운동은 1920년대 민족 자본을 적극적으로 육성하려는 취지 하에 조만식, 김동원 등이 평양에서 물산장려회를 조직하면서 촉발되었다. 일제의 수탈 정책 하에 경제적 자립을 꾀하고자 한 이 운동은 국산품 장려 등의 형태로 전개되었다. 1923년에는 전국적 조직체인 물산장려회가 조직되고 각 지방에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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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에 있었던 가등농장에서 발생한 소작 쟁의. 1920년대 들어 동양척식주식회사, 가등농장 등 일본 지주 회사들이 용인 지역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면서 많은 토지를 소유하게 되었다. 이들은 대규모 농장을 경영하면서 고율의 소작료 등으로 막대한 이익을 얻고 있었다. 1926년 2월 농장측은 일방적으로 수백 명의 소작권 이동을 단행하고, 7월 소작권을 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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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경기도 용인의 수룡수리조합 수리 공사 과정에서 발생한 노동 쟁의. 용인 지역 노동자들은 대부분 실업자이거나 반농 반노동에 종사하는 열악한 처지에 있었으며, 이들은 가혹한 노동, 낮은 임금, 임금 삭감 등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었다. 이러한 사회 경제적 처지와 부당한 대우가 수룡수리조합 노동쟁의의 배경이 되었다. 수룡수리조합 수리 공사에 동원된 조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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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역북동 일대의 소작농들이 동양척식주식회사를 상대로 일으킨 소작쟁의. 1930년대 초 세계 경제공황의 여파로 인해, 조선에서는 쌀값이 폭락하고 농민의 부채가 가중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1930년대 경기도 용인시의 농민운동 역시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본격화되었다. 1930년대 경기도 용인시의 경작면적은 경기도 전체 면적에 비해 매우 영세한 규모였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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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경기도 용인군과 수원군 일대에 설치된 수리조합. 일제의 산미증식계획에 따라 경기도 용인군 기흥면과 수지면, 수원군 안룡면과 대장면 일대의 관개(灌漑) 개선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수룡수리조합은 1927년 8월 설립인가를 받아 경기도 용인군 기흥면과 수지면, 수원군 안룡면과 대장면 일대의 747정보를 몽리구역(蒙利區域)으로 하여 설립되었다. 오성선(吳性善) 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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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기도 용인 지역에 있었던 금융 조합. 일제강점기에 일반 농민을 대상으로 하는 유일한 근대적 금융기관은 금융조합이었다. 금융조합은 일제가 통감부 시기 한국 경제의 식민지적 재편과 식민지 산업 정책을 뒷받침 할 산업 금융기관의 일환으로 설립된 농공은행(1906)의 보조 기관으로 설치되었다. 즉, 농공은행은 농공업의 개량 발달을 표방하며 주요 도시에 세워졌고 농공은행이 포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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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기도 용인군에 조직되었던 잠업 분야 조합. 1910년대 초 조선총독부 총독 데라우치[寺內正毅]는 각 군에 계(契)를 잘 활용하여 농사 개량과 산업 발전에 활용하라는 훈시를 한 후 각종 산업 단체 설립에 주력하였다. 이로 인해 1911년 10월 개성축산동업조합을 효시로 전국에 각종 산업 단체가 설립되어 경기도 용인시에도 면작조합, 양잠조합, 축산조합, 승입조합(繩入組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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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기도 용인군에 조직된 축산 조합. 일제가 소의 증식과 개량을 통해 식민지 수탈을 꾀할 목적으로 조직하였다. 1911년에 경기도 개성군에 축산조합이 설립된 것을 시작으로 1913년 시흥군·포천군·광주군·파주군에 설치되었고 1915년 용인군 외 14개군에 설치되었다. 이후 경기도 지역에 설립되었던 20여 개의 축산조합은 「조선중요물산동업조합령」에 따라 축산동업조합으로 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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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기도 용인군에 가마니 생산과 판매를 위해 결성하였던 조합. 일제가 부업을 장려한다는 명목으로 한국 농민의 잉여 노동력을 수탈하기 위해 조직하였다. 일제는 부업을 장려하여 농가경제를 향상시킨다는 명목 하에 한국 농민의 잉여 노동력을 수탈하기 위해 1917~1918년경부터 적극적으로 가마니짜기를 강조하였다. 이에 가마니의 생산과 판매의 합리화를 꾀하고자 군 단위로 승입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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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기도 용인 지역에 조직된 학교 조합. 일제가 일본인 아동들을 교육시킬 목적으로 조직하였다. 용인학교조합은 1913년 4월 경기도 용인군 지역에 사는 일본인 아동들을 위하여 설치되었으며, 5월에는 경기도 용인군 수여면 김량장리에 용인공립심상소학교가 설립되었다. 일제는 한국 내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을 위해 1912년 학교조합령을 제정하고 학교조합을 공적기관으로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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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식산계령에 따라 경기도 용인에 설치된 농촌 금융 기관. 일제는 영세 농민의 이익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1935년 8월 「식산계령」을 발포하여 각 지역 금융조합 산하에 식산계 설치를 적극 권장하였다. 금융 조합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영세 농민의 이익을 위한다는 명분이었다. 식산계는 농촌진흥운동의 일환인 농가 갱생 계획 사업과 상호 보완 관계가 되도록 조직된 단체로서 금융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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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용인소년회가 개최하였던 교육 행사. 김량동화회는 1920년대 이후 전국에서 활발히 전개된 소년운동의 일환으로 개최된 교육 행사이다. 당시 소년운동은 유교 윤리의 폐습과 차별적인 식민지 교육으로부터 조선의 소년·소녀들을 해방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근대 교육을 통하여 소년·소녀들이 자유로운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끄는 반봉건 근대화운동이자, 반일민족운동으로 전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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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결성된 청년 단체. 3·1운동 이후 민족운동의 역량이 도시와 농촌, 사상과 종교, 계층과 계급을 막론하고 확대되는 분위기 속에서, 청년들을 위한 교육활동과 사회사업을 전개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25년 10월 한통문(韓通文), 조병주(趙炳柱) 등이 발기하여 설립하였다. 회원은 100여 명에 달했다. 야학부를 설치하여 청년들의 교육과 계몽에 힘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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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기도 용인군에 조직되었던 농회. 농회는 식민 농업정책의 말단기관으로서 일제가 한국 농민을 통제하고 수탈할 목적으로 조직하였다. 일제는 1910~20년대에 산업단체가 난립함에 따라 통제의 어려움을 느끼고 제1차 산업단체 정리 방침을 표명하였다. 이에 따라 1926년 1월 25일 조선농회령을 발포하면서 계통농회를 설립하여 농사·면직·양잠 부문의 산업단체를 정리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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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에 있었던 농림업 관련 회사. 일제강점기에 용인군에 본점을 둔 회사는 용인면 김량장리의 용인임산을 포함하여 기흥면 서천리의 용수흥업주식회사, 내사면 남곡리의 단파농장, 수여면 김량장리의 중앙자동차 등 4개가 있었다. 1940년 11월 17일 일본인 평산충일(平山忠一)에 의해 자본금 100,000원으로 설립된 용인임산은 임산물의 처분, 임산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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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결성된 청년 단체. 3·1운동 이후 민족운동의 역량이 도시와 농촌, 사상과 종교, 계층과 계급을 막론하고 확대되는 분위기 속에서, 용인의 중추기관이 되고자 설립을 꾀하였다. 용인청년구락부는 3·1운동 후 청년운동의 중추기관으로 창립할 계획에 있었으나, 일제 측의 제재로 설립이 중단되었다. 경기도 용인시 지역의 청년운동 단체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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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결성된 청년 단체. 용인청년회는 1920년대 결성된 청년단체로, 전신인 갑성회의 정신을 이어받아 야학활동과 계몽활동을 전개했다. 3·1운동 이후 민족운동의 역량이 도시와 농촌, 사상과 종교, 계층과 계급을 막론하고 확대되는 분위기 속에서, 용인의 중추기관이 되어 신사상운동에 주력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24년 3월 유재헌(劉載獻) 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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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과 남사면에서 결성된 청년 단체. 3·1운동 이후 민족운동의 역량이 도시와 농촌, 사상과 종교, 계층과 계급을 막론하고 확대되는 분위기 속에서, 시의적(時宜的) 습관의 개량 및 지방산업 발전을 꾀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이사청지회는 1916년 1월 23일 신현정(申鉉鼎), 김교면(金敎冕), 구영회(具永會)를 비롯한 12명이 발기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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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에서 결성된 청년 단체. 3·1운동 이후 민족운동의 역량이 도시와 농촌, 사상과 종교, 계층과 계급을 막론하고 확대되는 분위기 속에서, 지식 계발, 산업 진흥, 상호 친목 도모를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일신친목회는 남태원(南台元)과 정의열(鄭義烈)을 각각 회장, 총무로 하여 1922년 10월 29일에 창립되었다.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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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좌항리에서 결성된 청년 단체. 3·1운동 이후 민족운동의 역량이 도시와 농촌, 사상과 종교, 계층과 계급을 막론하고 확대되는 분위기 속에서, 풍속을 교정하고 생활 개선, 지식 보급, 식산흥업을 목표로 설립되었다. 좌항진흥회는 1925년 8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좌항리에 창립되었다. 좌항진흥회의 발기인은 정확히 확인되지 않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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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기도 용인 지역에 있었던 교육 기관. 청년훈련소는 한국인을 강제 동원하기 위해 일본어 등 기초적인 교육을 실시할 목적으로 건립하였다. 청년훈련소는 원래 서울을 비롯한 인천·개성 등지에서 일본인들의 제국재향군인분회장(帝國在鄕軍人分會長)에 의해 설립되었다. 그러던 것이 일제 말기에 들어 한국인을 강제 동원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청년훈련소를 개설하게 되었다. 경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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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경기도 용인군 내사면 양지리에 선정된 갱생지도부락. 조선총독부는 1920년대 말 농업 공황으로 농촌 경제가 어려워지자 이를 해소하기 위한 일환으로 1930년대 들어 농촌진흥운동을 실시하였으며, 농촌경제갱생계획에 따라 갱생지도부락을 선정하였다. 관제기구로 농촌진흥위원회를 조직하는 한편, 각 읍면별로 30~40호 단위의 갱생지도부락을 선정하여 5년 기한의 농가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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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남곡리에 있었던 일본인 농장. 단파농장은 토지 개간 및 일반 농업 경영, 조림(造林) 및 토지의 매매, 대차(貸借), 농산물 가공 판매 등과 관련된 사업을 하였던 일본인 농장이다. 1923년 5월 3일 단파직태랑(丹波直太郞)이 자본금 70,000원으로 설립한 합자 회사로, 경기도 용인군 내사면 남곡리(지금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남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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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기도 용인 지역에 있었던 금융 신탁 회사. 일제강점기에 용인군에 본점을 둔 회사는 기흥면 서천리의 용수흥업주식회사를 포함하여 내사면 남곡리의 단파농장, 수여면 김량장리의 중앙자동차, 용인면 김량장리의 용인임산 등 4개가 있었다. 1925년 5월 10일 기흥면 서천리에 자본금 200,000원으로 설립되었으며 회사 대표는 오성선이었다. 금융 신탁회사로 주로 농업 자금을 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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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에 설립되었던 운송회사. 중앙자동차주식회사는 경기도 용인군에 본점을 둔 4개의 근대식 회사 중 하나로, 여객과 화물 운송을 담당하였다. 1930년 1월 25일 송재구(宋在龜), 남상학(南相鶴), 박복녀(朴福女), 이원익(李源翊) 등에 의해 경기도 용인군 수여면 김량장리에 세워졌으며, 자본금 65,000원을 기반으로 한 주식회사의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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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개최되었던 체육 행사. 용인소년축구대회는 1920년대 이후 전국적으로 활발히 전개된 소년운동의 일환으로 용인청년회가 개최하려고 준비한 체육 행사이다. 소년운동단체인 용인청년회에서는 각급 학교나 소년회 등을 대상으로 각종 운동 경기를 개최하였다. 1927년 6월 26일에는 수원, 진위, 안성, 여주, 이천, 광주 등 인근 지역과 용인축구대회 개최를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