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04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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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德厚樓 |
영어공식명칭 | Deokhuru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수리 457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순한 |
건립 시기/일시 | 1700년대 - 덕후루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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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1987년 12월 29일 - 덕후루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34호로 지정 |
현 소재지 | 덕후루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수리 457 |
원소재지 | 덕후루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수리 457 |
성격 | 건축물 |
정면 칸수 | 7칸 |
측면 칸수 | 8칸 |
소유자 | 박동복 |
관리자 | 박동복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34호 |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수리에 있는 조선 후기 재실.
[개설]
박의장(朴毅長)[1555~1615]의 묘를 수묘하기 위해 세운 재실이다. 박의장의 본관은 무안(務安), 호는 청신재(淸愼齋), 시호는 무의(武毅)이다. 무관으로서 관직은 경상좌도수군절도사(慶尙左道水軍節度使)에 올랐으며, 임진왜란 때의 전공으로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녹훈되었다. 구봉서원(九峯書院)에 제향하였다.
[위치]
덕후루(德厚樓)는 창수면 수리에 있는 집희암(集喜庵) 마을 입구에 있다. 집희암과 연접해 있으며, 오른쪽으로 500m 거리에 병마절도사박의장신도비가 있다. 누각의 서쪽 산기슭에 박의장의 묘소가 있다.
[변천]
덕후루는 박의장의 묘를 수묘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덕후'라는 당호는 『논어』에 나오는 "어버이 상을 당했을 때 장례를 신중하게 행하고 먼 조상들을 정성껏 제사 지내면 백성들의 덕성이 한결 돈후하게 될 것이다[愼終追遠 民德歸厚矣]"라는 구절에서 뜻을 취한 것이다. 건립연대는 알수 없으나 누각의 구조상 1700년대 건립한 것으로 추정된다.
덕후루와 연결된 건물로 집희암(集喜庵)이 있다. 1746년(영조 22) 작성된 「집희암 재사 등장(集喜庵齋舍等狀)」을 보면 덕후루보다 앞서 박의장의 분묘를 수호하기 위해 17세기 집희암이 건립된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 건물이 추가되어 재사로 확장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집희암 재사 등장」을 살펴보면 조선시대 박의장 묘소 관리 및 지역 내 박의장의 위상을 보여주는 내용이 있다. 등장에 따르면 조선시대에는 명현의 분묘관리와 관련하여 각종 세금을 감면해 주는 관행이 있었다. 영해부 역시 박의장의 묘를 관리하는 묘지기에 대해 각종 신역을 면제해 주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세금을 다시 징수하기 시작하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무안박씨 가문에서 박숙(朴潚)을 필두로 집안인사 22명이 연명해 세금 감면을 청원하였고, 이에 영해부사는 세금부과를 중지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형태]
덕후루는 동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는 '□' 자 건물로서, 앞채는 '一' 자형 다락집인 덕후루, 뒤채는 '○'형 단층집인 집희암(集喜庵)과 양 익사(翼舍)로 구성되어 있다. 덕후루는 재사의 정면을 이루었는데, 7칸 중 양 퇴칸에는 누상에 온돌방을 시설하였고, 중앙 부분은 누하 어칸에 출입대문을 내고, 협칸과 다음 협칸은 통칸의 수납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누상은 모두 우물마루를 깔고 내부 쪽은 개방하여 난간을 돌리고 정면에는 각칸 판벽의 중앙에 양개널문을 달았다. 연결된 건물인 집희암은 중앙 6통칸 방과 우측에 2통칸의 마루방, 좌측에 4통칸의 방앗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양 익사는 지붕을 낮게 꾸민 부속사로 온돌방과 부엌들로 구성되어 있다. 구조는 덕후루는 3량가이고 집희암은 5량가인데, 모두 제형 판대공을 세우고 첨차를 놓아 종보를 올려놓았다.
[현황]
1987년 12월 29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