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홍명형 정려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301218
한자 洪命亨 旌閭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기도 양주시 남면 감악산로 52번길 23-12[상수리 산55-1]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서동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현 소재지 홍명형 정려 - 경기도 양주시 남면 감악산로 52번길 23-12[상수리 산55-1]지도보기
성격 정려

[정의]

경기도 양주시 남면 상수리에 있는 조선 후기 충신 홍명형(洪命亨)의 정려(旌閭).

[개설]

홍명형[1581~1636]의 자(字)는 계통(季通), 호(號)는 무적당(無適堂), 시호는 의열(義烈)이다. 1612년(광해군 4) 문과에 장원 급제하고 이후 전적·형조 참의 등을 지냈다. 1639년(인조 17) 병자호란 때 강화도로 피난하였다가 김상용(金尙容)과 함께 분신자살하였다. 이때 홍명형의 부인 창녕 성씨(昌寧成氏)도 자결하였다. 이조판서에 추증되었고, 강화의 충렬사(忠烈祠)에 위패가 봉안되었다.

[위치]

홍명형 정려망당산[203.1m]의 남쪽 기슭에 위치한다. 망당산남양 홍씨(南陽洪氏)의 종중산으로, 남양 홍씨 종중 사무실이 있다.

[변천]

조선 조정에서 병자호란 때 자결한 홍명형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17세기에 정려를 하사하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허물어 없어지고 현판만 남아 있었으나, 최근 후손들이 묘소 앞에 정려를 신축하고 현판을 걸었다.

[현황]

현판에는 ‘충신 증 자헌대부 이조판서 겸 지경연·의금부·춘추관·성균관사 홍문관 대제학 예문관 대제학 세자좌빈객 오위도총부 도총관 행통정대부 승문원 좌승지 지제교 겸 경연 참찬관 춘추관 수찬관 증 시 의열공 홍명형지문(忠臣贈資憲大夫吏曹判書兼知經筵義禁府春秋館成均館事弘文館大提學藝文館大提學世子左賓客五衛都摠府都摠管行通政大夫承文院左承旨旨製敎兼經筵參贊官春秋館修撰官贈諡義烈公洪命亨之門)’이라고 쓰여 있다.

[의의와 평가]

경기도 양주 출신인 홍명형의 정려를 통해, 조선 조정이 병자호란이 끝난 후 관료 사회의 동요를 차단하고 흐트러진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전란 기간에 명예롭게 자결한 관리에 대한 유교 전통의 포상을 실시함으로써 교육적 효과를 극대화시키고자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