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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기도 양주목 광석면[현 양주시 광적면 가납리]에 있던 다리. 가업교라는 명칭은 18세기 중엽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처음 등장한다. 가업교는 가래나무[추자목(楸子木)]가 많은 마을에서 그 나무를 이용해 만든 다리로 추측된다. 조선 후기에 가래비 혹은 가라비(加羅非)는 백석면[현 백석읍 가업리] 쪽에도 있었지만 『1872년 지방지도』 등에 등장하는 가라비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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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와 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의 남쪽 한강 부근에 있었던 나루. 고려와 조선 시대 때 국가에서는 교통로 상의 강변 요충지에 진[혹은 관진(關津)·진관(津關)]이나 도(渡)·도진(渡津)을 설치하여 강을 건너는 사람들을 검색하거나, 여기에 배치된 관선(官船)인 진도선(津渡船)[나룻배]를 이용하여 국가의 명령 전달이나 사람과 물자 수송 등 교통과 통신 기능을 담당하게 하였다. 유명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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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에 속했던 남양주시 화도읍 구암리에 있던 교통·통신 기관. 역(驛)은 고대 이래 중앙 정부와 지방간의 효율적인 연결망을 구축하기 위해 육로(陸路)에 설치한 교통·통신 조직의 일종으로 역참(驛站)이라고도 하였다. 구곡역(仇谷驛)은 고려 시대에는 춘주도(春州道)의 역 가운데 양주[남경] 지역에 속해 있으면서 양주·한양에서 춘주[춘천] 방면을 연결하였고, 조선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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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부터 조선 시대까지 경기도 양주에 설치되었던 교통·통신 기관. 역(驛)은 고려와 조선 시대 주요 도로에 일정한 거리마다 설치되어 교통 통신의 역할을 담당하였던 것으로 역참(驛站)이라고도 불렀다. 노원역은 청파역과 함께 한성부 성저십리(城底十里) 지역에 위치하였으며, 함경도 지방을 연결하는 첫 번째 역으로 청파역과 함께 병조에서 관리하였다. 노원역은 다른 지역의 역들과 마찬가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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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에 속했던 의정부시 녹양동에 있던 교통·통신 기관. 역(驛)은 고대 이래 고려·조선 시대에 중앙 정부와 지방간의 효율적인 연결망을 구축하기 위해 육로(陸路)에 설치한 교통·통신 조직의 일종으로 역참(驛站)이라고도 하였다. 녹양역(綠楊驛)은 고려 시대에는 청교도(靑郊道)의 역 가운데 양주 관내 견주 지역에 속해 있으면서 개경(開京)에서 양주[남경] 방면을 연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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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유양동에 있는 조선 시대 성황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제단의 터. 고려 전기의 성황신은 국가 수호의 의미를 가진 신으로 각 지방관이 입묘(立廟)하여 춘추(春秋)로 제사를 지냈다. 이후 점차 민속화하여 고려 중기에 이르러 전국 각 지방으로 퍼졌으며, 후기에는 토속적인 고유 신앙과 결합되어 제사를 지냈다. 조선 건국 초에는 국가의 공적 의례에 포함되어 전국적으로 군현의 읍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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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거주하고 있는 성씨(姓氏). 성씨의 연원은 태조 왕건(王建)이 후삼국을 통일한 다음 전국의 군·현의 이름을 개정하고 개국 공신을 책봉했던 940년(태조 23)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이전 고대 국가에서는 성씨는 왕족과 극히 일부 중앙 귀족들만의 전유물이었다. 후삼국 시대 성주(城主), 장군, 촌주 등의 신분을 지니면서 지방 세력을 대표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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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에 속했던 남양주시 진전읍 내곡리에 있던 교통·통신 기관. 역(驛)은 고대 이래 중앙 정부와 지방간의 효율적인 연결망을 구축하기 위해 육로(陸路)에 설치한 교통·통신 조직의 일종으로 역참(驛站)이라고도 하였다. 쌍수역(雙樹驛)은 고려 시대에는 상수역(桑樹驛)으로 불렸으며 춘주도(春州道)의 역 가운데 양주 관내 풍양현에 속해 있으면서 양주[남경]에서 포천·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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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의 연원은 태조 왕건(王建)이 후삼국을 통일한 이후에나 찾아볼 수 있다. 왕건이 전국의 군·현 이름을 개정하고 개국 공신을 책봉했던 940년(태조 23)으로 거슬러 올라갈 때 고려 이전 고대 국가에서는 성씨가 왕실 및 일부 귀족의 전유물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양주의 토착 성씨는 조선 전기 사회 상황을 전하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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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유양동에 있는 조선 시대 여제(厲祭)를 지내던 제단 터. 여제는 제사를 받지 못하는 무주고혼(無主孤魂)이나 전염병을 퍼뜨리는 귀신인 여귀(厲鬼)에게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조선 시대에는 서울과 지방의 각 군현에 여단을 두어 역병을 예방하였다. 여제단(厲祭壇)을 줄여서 여단(厲壇)이라고도 하는데, 동쪽의 성황단, 서쪽의 사직단과 함께 관아에서 필수적으로 세우는 제단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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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경기도 양주 지역에 설치되었던 교통·통신 제도. 역(驛)은 고대 이래 고려·조선 시대에 중앙 정부와 지방 간의 효율적인 연결망을 구축하기 위해 육로(陸路)에 설치한 교통 통신 조직의 일종이다. 역은 국가가 지방 통치를 위한 정령(政令)의 전달과 관리의 왕래, 외교 사행의 영송(迎送), 군사의 왕래 등 국가의 공적 행위가 원활히 수행되도록 하는 교통·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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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부터 조선까지 경기도 양주에 설치된 교통·통신 기관. 역(驛)은 고대 이래 중앙 정부와 지방간의 효율적인 연결망을 구축하기 위해 육로(陸路)에 설치한 교통·통신 조직의 일종으로 역참(驛站)이라고도 하였다. 영서역(迎曙驛)은 고려 시대에는 청교도(靑郊道)의 역 가운데 양주[남경] 지역에 있으면서 파주·교하·개경 등지를 연결하였고, 조선 시대에는 양주 치소에서 서쪽 60리[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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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복지리의 흥복저수지에서 장흥면 울대리로 내려가는 계곡에 있는 연못. 용못은 용이 살았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용은 승천하였다고 전해지며, 용못에서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왔다고 한다. 이와 달리 용이 승천하지 못하고 이무기가 되어 폭포수에서 살았으며, 연못 주변에 소를 매어 놓으면 잡아먹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용못골, 용무골, 용연동(龍淵洞)과 연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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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 거주하는 주민의 수 또는 집단. 2011년 10월 현재 양주시의 인구는 20만 5945명이다. 이 가운데 외국인이 7,866명[3.8%]이고 세대수는 7만 6197세대이다. 행정 구역 면적이 310㎢이므로 인구 밀도는 664명/㎢에 달한다. 인구수가 가장 많은 곳은 양주2동이고, 회천2동과 회천3동이 뒤를 잇는다. 반면 인구수가 가장 적은 곳은 회천4동이다. 양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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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경기도 양주 지역의 주요 수상 교통로에 설치된 나루. 고려와 조선 시대 때 국가에서는 주요 교통로 상의 강변 요충지에 진(津) 또는 도(渡)를 설치하여 강을 건너는 사람들을 검색하거나 여기에 배치된 진도선(津渡船)[나룻배]을 이용하여 국가의 명령 전달, 사람과 물자 수송 등 교통과 통신 기능을 담당하게 하였다. 진의 관리와 운영을 위해 고려 시대에는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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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같은 성씨가 오랜 기간 한 마을을 이루어 살고 있는 지역. 집성촌이란 하나의 지배적인 동성 동족(同姓同族) 집단이 특정 마을에서 주도권을 가지고 집단적으로 거주하는 마을이다. 집성촌이 형성된 시기에 대해선, 어떤 성씨는 고려 시대 혹은 고대까지 올려 잡기도 하고, 실제로 어떤 거주자들은 자신이 속한 집성촌이 300~400년 혹은 500~600년 전에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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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부터 조선까지 경기도 양주에 설치된 교통·통신 기관. 역(驛)은 고대 이래 고려·조선 시대에 중앙 정부와 지방간의 효율적인 연결망을 구축하기 위해 육로(陸路)에 설치한 교통·통신 조직의 일종으로 역참(驛站)이라고도 하였다. 청파역(靑坡驛)은 고려 시대에는 청교도(靑郊道)의 역 가운데 양주[남경] 지역에 있으면서 파주·교하·김포·부평 등지를 연결하였고, 조선 시대에는 숭례문[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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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에 속했던 남양주시 삼패동 평구마을에 있던 교통·통신 기관. 역(驛)은 고대 이래 중앙 정부와 지방간의 효율적인 연결망을 구축하기 위해 육로(陸路)에 설치한 교통·통신 조직의 일종으로 역참(驛站)이라고도 하였다. 평구역(平丘驛)은 고려 시대에는 남경[양주]에서 평창이나 봉화 방면으로 갈 수 있는 평구도(平丘道)의 중심 역이었다. 조선 시대에는 찰방(察訪)[종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