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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배를 타고 울릉도에 들어가 섬 안을 조사한 무신. 강원도관찰사 이극돈(李克墩)의 보고에 의하면 삼봉도경차관(三峯島敬差官) 박종원(朴宗元) 일행은 4척의 배를 타고 1472년(성종 3) 5월 28일 울진을 출발했다. 박종원이 탄 배는 큰 바람을 만나 7일간 표류하다가 삼봉도에는 가보지도 못한 채 울릉도만 바라보고 다시 표류하여 6월 6일에 간성의 청간진으로 돌아왔다. 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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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울릉도 입도인(入島人). 1439년(세종 21) 형조에서 아뢰기를, “김범(金凡)·귀생 등이 함부로 무릉도(茂陵島)에 들어가 살았사오니, 율에 의하여 교형에 처하옵소서” 하니, 조정에서 그대로 따랐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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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울릉도 입도인(入島人). 1439년(세종 21) 형조에서 아뢰기를, “김범·귀생(貴生) 등이 함부로 무릉도(茂陵島)에 들어가 살았사오니, 율에 의하여 교형에 처하옵소서” 하니, 조정에서 그대로 따랐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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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울릉도 입도인(入島人). 1438년(세종 20) 형조에서 아뢰기를 “김안이 수모(首謀)가 되어 일을 꾀하다 무릉도(茂陵島)로 도망해 들어갔사오니, 율에 의해 교형에 처하는 것이 마땅하고, 그 밖의 종범(從犯)은 모두 경성(鏡城)으로 옮길 것을 청하옵니다”하니, 조정에서 그대로 따랐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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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삼척영장을 역임한 무신. 본관은 의성(義城). 증조부 김만전(金萬詮)은 음직으로 내금위를 역임하였으며 할아버지 김양선(金揚善)은 계공랑(啓功郞)을 지냈다. 아버지는 김충손(金忠孫)이고 어머니는 성산이씨(星山李氏) 요황(墝晃)의 딸이었다. 부인은 성산배씨(星山裵氏)와 문화유씨(文化柳氏)가 있었으며 아들 김홍의(金弘義)는 장단방어사(長湍防禦使)를 역임하였다. 1613년(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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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울릉도로 도망하여 거주하였던 유민. 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에는 강원도 지역에서 울릉도로 도망가 살던 사람들이 있었다. 김을지 역시 그러한 사람들 중 하나였다. 조선 중앙 정부는 이러한 사람들이 군역(軍役)을 피해 국가의 통제가 잘 미치지 않는 먼 섬으로 도망하였다는 것과, 가짜 왜구 행세를 하며 본토의 연해 마을을 노략질 하는 일이 있으며, 울릉도·독도 지역에 머물러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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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독도를 발견하여 보고한 인물. 1476년(성종 7)에 영안도[현 함경도] 관찰사 이극균이 치계(馳啓)하기를 “영흥(永興) 사람 김자주(金自周)가 말하기를, ‘삼봉도(三峯島)를 가 보고 또 그 모양을 그려 왔다’고 하므로, 김자주를 보내어 그 그림을 바치게 합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성종이 명하여 물어보니, 김자주가 대답하기를 “함경도 경성(鏡城) 바닷가에서 배를 타고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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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울릉도에 사람이 거주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해금정책의 기초를 마련한 문신. 1400년(정종 2) 좌간의(左諫議)를 거쳐 1409년(태종 9) 우간의(右諫議)를 지냈다. 1411~1413년 강원도관찰사를 지내고, 이듬해 인녕부윤(仁寧府尹) 재직 당시에 정조사(正朝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호조판서로 재직하고 있던 1416년(태종 16) 박습은 태종에게 자신이 강원도관찰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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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유산국도[현재의 울릉도]에서 본토로 들어온 인물. 『태종실록(太宗實錄)』 권 23 기사조(己巳條)에 의하면 강원도관찰사의 보고에 의해 의정부에서 백가물 등 유산국도(流山國島) 사람을 처리하는 방법에 대하여 의논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유산국도 사람 백가물 등 12명이 고성(高城) 어라진(於羅津)에 정박하여 말하기를, “우리들은 무릉도(武陵島)에서 생장하였는데, 그 섬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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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무릉도[지금의 울릉도]에 관한 일을 담당한 문신. 성종은 강원도관찰사 성순조에게 영안도(永安道)에 사는 백성들 가운데 몰래 무릉도(茂陵島)에 들어간 자를 색출하여 체포하게 하였다. 또한 성순조에게 세종 때에 울릉도에 왕래한 자를 찾아 물어보고 울릉도에 파견할 원행사를 모집함과 아울러 선박들을 준비하라고 지시하였다. 그러나 성종은 이계손이 보고한 삼봉도(三峯島)가 아닌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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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태하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성하신당에 관한 이야기. 바다와 관련된 지역이라면 희생 제의적인 설화가 전승되기 마련이다. 희생 제의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들에 의해 바다가 수호되고 있다고 믿고 있다. 2007년에 울릉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울릉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1417년(태종 17)에 안무사(按撫使)였던 김인우(金麟雨)는 울릉도 거주민의 쇄환(刷還)을 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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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울릉도 거주민을 본토로 이주시킨 정책. 고려 말기에서 조선 초기에는 울릉도에 주민이 거주하면 울릉도를 침입한 왜구가 이곳을 근거지로 하여 강원도 등을 침구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또한 당시에는 울릉도는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울릉도에 들어간 어민들로부터 조세 수취와 역역 동원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실정이었다. 조선 초기 연근해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왜구 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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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삼봉도[지금의 독도] 토벌 준비에 앞장선 무신. 1479년(성종 10) 북도절도사(北道節度使) 신주는 남도절도사(南道節度使) 이흠석(李欽石), 영안도관찰사(永安道觀察使) 이덕양(李德良)과 함께 본도(本道)에서 차역(差役)을 피해 몰래 삼봉도(三峯島)로 숨어든 수천 명의 인민을 토벌할 계획을 세웠다. 경차관(敬差官) 신중거(辛仲琚)의 명에 따라 초마선(哨麻船) 50척[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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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강원도관찰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인지(引之), 호는 경헌(敬憲). 이진(李珍)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이유(李猷)이다. 아버지는 이의인(李依仁)이며, 어머니는 송구윤(宋九贇)의 딸이다. 이계손은 1447년(세종 29) 식년문과에 정과로 급제하였다. 1453년(단종 1) 정언, 1455년(세조 1) 병조좌랑, 1457년(세조 3) 예조정랑을 거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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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강원도관찰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사고(士高). 고려 말 광주의 향리였던 이집(李集)의 증손이며, 이지직(李之直)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우의정 이인손(李仁孫)이며, 어머니는 노신(盧信)의 딸이다. 세 형과 아우 한 명이 모두 과거에 급제하여 ‘오자등과(五子登科)’로 유명할 뿐 아니라 아버지와 맏형 이극배(李克培), 아우 이극균(李克均) 등 3부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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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삼봉도[지금의 독도] 토벌 준비에 앞장선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 이정간(李貞幹)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이지장(李智長), 어머니는 이승(李昇)의 딸이다. 1479년(성종 10) 8월 30일 영안도관찰사(永安道觀察使) 이덕양은 남도절도사(南道節度使) 이흠석(李欽石), 북도절도사(北道節度使) 신주(辛鑄)와 함께 본도(本道)에서 차역(差役)을 피해 몰래 삼봉도(三峯島)로 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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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삼봉도[지금의 독도] 토벌 준비에 앞장선 무신. 1479년(성종 10) 남도절도사(南道節度使) 이흠석은 북도절도사(北道節度使) 신주(辛鑄), 영안도관찰사(永安道觀察使) 이덕양(李德良)과 함께 본도(本道)에서 차역(差役)을 피해 몰래 삼봉도(三峯島)로 숨어든 수천 명의 인민을 토벌할 계획을 세웠다.경차관(敬差官) 신중거(辛仲琚)의 명에 따라 초마선(哨麻船) 50척[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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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무릉도에 들어갈 때 표류한 수군. 1425년(세종 7) 무릉도(茂陵島)에 들어갈 때 바람에 표류하였던 평해(平海) 사람 장을부(張乙夫) 등이 일본에서 돌아와 말하기를, “처음에 수군 46인이 한 배에 타고 안무사(安撫使) 김인우(金麟雨)를 수행하여 무릉도를 향해 갔다가, 갑자기 태풍이 일어나 배가 부서지면서 같은 배에 탔던 36인은 다 익사하고, 우리들 10인은 작은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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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삼봉도[지금의 독도] 정토에 사용할 전함의 건조를 감독하고 체류민을 쇄환시킨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태허(太虛), 호는 매계(梅溪). 조경수(曹敬修)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심(曹深)이고 아버지는 울진현량 조계문(曹繼門)이다. 어머니는 유문(柳汶)의 딸이다. 7세에 이미 시를 지을 정도로 재주가 뛰어나 족숙 조석문(曹錫文)이 불러 가숙에 머물러 독서하도록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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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대마도도주. 아들 종정성(宗貞盛)을 두었다. 1407년(태종 7)에 대마도수호(對馬島守護) 종정무(宗貞茂)가 다이라도오젠[平道全]을 파견하여 토물(土物)을 바치고, 왜구에게 잡혀갔던 사람들을 돌려보냈다. 또한 무릉도(武陵島)[현 울릉도]에 여러 촌락(村落)을 거느리고 가서 옮겨 살기를 청하였으나 태종으로부터 거절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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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울릉도 쇄출(刷出) 정책에 반대한 문신. 안무사(按撫使) 김인우가 울릉도로부터 1417년 2월 5일 귀환하여 복명하자, 태종은 우의정 한상경에게 명하여 육조의 대신들과 대간들을 소집해서 어전회의를 열어 울릉도 거주민의 육지 이주에 대한 가부를 의논하게 하였다. 이 어전회의에서는 육지 이주에 반대하는 다수의 의견과 속히 이주시키자는 공조판서 황희의 주장이 엇갈렸는데 태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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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울릉도 해금정책 확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문신. 본관은 장수(長水). 초명은 수로(壽老). 자는 구부(懼夫), 호는 방촌(尨村). 황석부(黃石富)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황균비(黃均庇)이고 아버지는 자헌대부 판강릉대도호부사 황군서(黃君瑞)이며 어머니는 김우(金祐)의 딸이다. 개성 가조리(可助里)에서 출생하였다. 황희는 울릉도·독도 지역과 관련해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