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범한 만득자의 죽음과 신주못」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201742
한자 -晩得子-神主-
이칭/별칭 신주못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박은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71년 - 「비범한 만득자의 죽음과 신주못」 『영남의 전설』에 「신주못」으로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1982년 - 「비범한 만득자의 죽음과 신주못」 『의성의 전설』에 「신주못」으로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8년 - 「비범한 만득자의 죽음과 신주못」 『의성군지』에 「신주못」으로 수록
성격 전설|지명 유래 전설
주요 등장 인물 노부부|만득자|장군
모티프 유형 아기장군의 죽음

[정의]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에 있는 신주못의 명칭 유래 이야기.

[개설]

고목나무를 신주로 모시고 100일 기도를 드린 끝에 얻은 아들을 잃고, 그 목을 던진 못이 바로 신주못이다. 못의 이름이 유래하게 된 사연을 담고 있는 지명 유래 전설이면서, 광포 전설인 아기장수 설화의 한 변이형이다.

[채록/수집 상황]

1971년 유증선이 편저한 『영남의 전설』에 「신주못」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영남의 전설』에는 1969년 8월,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 음지동 이열수가 제공한 이야기라고 기록되어 있다. 1982년 의성군에서 발행한 『의성의 전설』, 1998년 의성 군지 편찬 위원회에서 발행한 『의성 군지』에도 같은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의성 문화 관광’ 홈페이지에도 소개되어 있다.

[내용]

조선 전기인 1456년(세조 2)에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에서 있었던 이야기라고 한다. 사곡면의 어느 마을에 한 늙은 부부가 살고 있었다. 노부부는 살림살이도 넉넉하여 부러울 것이 없었지만 한 가지 큰 걱정이라면 대를 이어나갈 자식이 없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하면 자식을 얻을 수 있을까 갖은 노력을 해보았으나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노부부의 집에 늙은 길손이 하룻밤 묵어가기를 청했다. 인심을 베풀어 그가 묵어갈 수 있도록 해주었는데, 그 노인이 노부부의 딱한 사정을 듣고는 방책을 알려 주었다. 깊은 산중에 들어가서 고목나무를 신주(神主)로 받들고 100일 기도를 드리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다고 알려준 것이다. 부부는 그날부터 길손이 시키는 대로 산중에 가서 정성껏 기도를 드렸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얼마 후 부인에게 태기가 있었고, 열 달을 채워 무사히 옥동자를 낳았다.

노부부가 뒤늦게 얻은 이 아이는 여느 아이들과 달리 비범하였다. 생후 3일째부터 말을 시작하더니 이내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것이었다. 노부부는 아들의 영특함에 몹시 기뻐하며 금지옥엽으로 길렀다. 아들이 자라는 것을 보는 것은 부부의 가장 큰 기쁨이었다.

어느 덧 아이는 돌이 지났다. 때는 모내기로 한창 바쁜 5월이었다. 아이는 논둑에서 놀고 부부는 모내기를 하고 있었다. 이때 한 장군이 말을 타고 달려와 다짜고짜 긴 칼을 휘두르며 말했다. “지금까지 심은 모의 포기 수를 알아내라. 만약 모른다면 이 칼로 세 사람의 목을 벨 것이다!”라며 위협하였다.

엉겁결에 생긴 일이라 늙은 부부는 부들부들 떨고 있을 뿐인데 아이가 아장아장 말 앞으로 걸어 나가서 태연히 말하였다. “제 질문에 장군이 답을 하면 저도 장군의 질문에 대답하겠습니다.” 장군이 좋다고 하자 아이는 “장군이 여기까지 오면서 디딘 말발굽의 수를 말해 보십시오. 그러면 저도 모의 포기 수를 말하겠습니다.” 아이에게 고스란히 당한 장군은 얼굴을 붉히며 “어디 두고 보자.”라는 말을 남기고 말머리를 돌려 사라졌다.

이 일이 있고 얼마 후 아이의 부친은 세상을 떠났다. 어느 날 아이가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니, 콩 100개만 볶아주세요. 만약 하나라도 모자라면 큰일 납니다.” 어머니는 아이가 시키는 대로 100개의 콩을 준비하였다. 그런데 콩을 볶다가 무심결에 그만 한 개를 먹어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아이는 슬픈 얼굴로 어머니에게 말하였다. “어머니 저는 오늘 어쩔 수 없이 죽게 될 것입니다. 제가 죽으면 제 목을 잘라서 명주 수건에 싼 후 남쪽으로 가다가 만나는 첫 번째 못에 버리십시오. 그런데 목을 버리고 나면 지난 번 그 장군이 와서 제 목을 찾을 것입니다. 하지만 절대로 가르쳐 주지 마십시오.” 아이는 어머니에게 신신당부를 하였다.

그리고는 방문을 여니 난데없는 화살이 날아들어 왔다. 아이는 콩을 던져서 화살을 막고 또 콩을 던져서 화살을 막았다. 그렇게 막기를 99번 하였는데 100번째 화살을 막을 콩이 없었다. 어머니가 하나를 먹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아이는 그만 100번째 화살에 맞아 죽고 말았다. 어머니는 자기의 잘못으로 아들이 죽게 된 것을 알고 크게 한탄하였다. 귀하게 얻은 만득자를 잃었으니 그 안타까운 마음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었다. 아들의 마지막 소원이라도 들어주어야겠다고 생각한 어머니는 아들의 목을 싸서 남쪽 첫 번째 못에 가서 던졌다. 막 돌아서려는데 지난 번 그 장군이 다시 말을 타고 나타났다. 겁에 질린 어머니는 장군의 협박에 못 이기고 또 다시 아들의 부탁을 저버렸다. 목을 못에 던졌다는 사실을 안 장군은, 못 둑에 있는 수양버들 잎을 세 번 훑어서 못에 던졌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못물이 반으로 갈라졌고 못 가운데에는 갑옷을 입은 장군이 일어서려고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것을 본 장군은 득달같이 달려가서 갑옷 입은 장군의 목을 베어버렸다. 그리고 돌아서서 그 어머니마저도 한 칼에 죽여 버렸다.

지금은 부부가 아들을 얻기 위해 신주로 모셨다는 고목나무도 없고 못 둑에는 수양버들도 없다. 다만 그 못은 지금까지도 남아서 못에 얽힌 옛날의 사연을 전하고 있다. 그 사연으로 인해 못의 이름을 ‘신주못’이라고 한다.

[모티프 분석]

「비범한 만득자의 죽음과 신주못」의 주요 모티프는 ‘아기장군의 죽음’이다. 신주못이라 불리는 못의 유래를 설명하고 있지만, 핵심 내용은 어리석은 부모에 의한 아기장군의 죽음이다. 아기장수 설화는 광포 전설로 전국 각지에 분포되어 있고 의성 지역에서도 다양한 변이형이 전하고 있다. 전승자 중에는 어머니의 말실수로 아들이 죽었다고 해서 여자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남녀의 문제라기보다 어리석은 민중의 문제이며, 권력자의 횡포로 인해 성취되지 못한 민중적 소망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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