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10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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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申周七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송내리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권대웅 |
[정의]
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신주칠(申周七)[1890~1938]은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송내리 출신으로, 1919년 3월 19일 점곡면에서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에 적극 참여하였다. 점곡면의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은 3월 18일 오후 9시 사촌동 오후 11시경 서변동 만세 시위로 이어졌고, 3월 19일에는 다시 사촌동의 만세 시위로 이어졌다.
신주칠은 이때 송내동 주민들과 함께 사촌동으로 몰려갔다. 부근 주민 500여 명과 함께 사촌동의 중앙 도로를 오르내리며 태극기를 앞세우고 만세 시위를 벌였다. 시위 군중들은 만세를 부르며 점곡 주재소로 몰려가 주위를 돌며 밤새도록 시위를 벌였다. 만세 시위는 다음날 20일 새벽 1시까지 전개되었는데, 일본 경찰의 발포로 해산하였다. 그리고 날이 밝자 시위 주도자들을 검거하기 시작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위대는 20일 밤 10시 다시 만세를 불렀는데 이때 모두 21명이 검거되었다. 1919년 5월 5일 대구 지방 법원 의성 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95년에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