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10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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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永達 |
이칭/별칭 | 형일(亨一)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쌍계리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권대웅 |
[정의]
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박영달(朴永達)[1887~1962]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쌍계리 출신으로, 1919년 3월 12일 쌍계 교회 목사 박영화(朴永和) 등과 함께 비안면 쌍계동의 3·1 운동 독립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박영달은 박영화·박영신·배중엽·배달근 등과 함께 200장 정도의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그런데 12일 오전 비안 공립 보통학교 학생들이 학교 뒷산에서 만세를 부른 뒤 정오 무렵 마을로 돌아오자 교인들과 동민들은 만세 시위에 들어갔다. 박영신의 집 앞 도로에 모인 마을 사람들에게 박영화·박영신·배중엽 등과 함께 태극기를 나누어 주었다. 시위 군중들은 태극기를 흔들면서 독립 만세를 외친 후 동리를 시위 행진하였고, 뒷산에 올라가 독립 만세를 외치고 해산하였다.
3월 12일 오후 4시 급보를 받은 의성 경찰서에서는 조선인 경부와 순사 부장을 급히 파견하여 비안 주재소 경찰과 함께 시위 주동자들을 대대적으로 검거하여 모두 18명이 기소되어 형을 받았다. 4월 26일 대구 복심 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1년 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83년에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고, 1990년에 건국 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