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10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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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好文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송내리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김명구 |
[정의]
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호문(金好文)[1887~1942]은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송내리 출신으로, 송내동 교회 교인이자 김해 김씨 일족으로 점곡면의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에 부친 김수배와 함께 참여하였다. 점곡면의 만세 시위는 1919년 3월 18일부터 20일까지 계속되었는데 처음 송내동 교회 권수백 조사 등 교인들이 시위의 초석을 마련하였고, 사촌동의 안동 김씨 청년들이 시위를 확산시켜 나갔다. 여기에 윤암동의 영양 남씨, 그리고 송내동의 주변 마을 사람들이 합세하여 전개하였다. 이 시위는 3월 20일 일본 경찰의 총격으로 해산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주동 인물 21명이 체포되었다. 김호문은 이 시위로 1919년 6월 2일 대구 지방 법원 의성 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죄로 징역 6월형을 선고 받아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95년에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