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10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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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在範 |
이칭/별칭 | 김재범(金載範)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 화전리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김명구 |
[정의]
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재범(金在範)[1900~1931]은 김재범(金載範)이라는 다른 이름도 전한다.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 화전리 출신으로, 1919년 대구 계성 학교(啓聖學校) 3학년에 재학 중 대구에서의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계성 학교의 교사이던 백남채(白南採)·최상원·권의윤·최경학(崔敬學) 등은 학생 대표들인 김재범(金在範)을 비롯, 심문태(沈文泰)·김삼도(金三道)·정원조(鄭元祚)·박태현(朴泰鉉)·이승욱(李陞旭)·손석봉(孫石鳳)·최영학(崔永學)·이영식(李永植)·이성용(李聖容)·박재곤(朴在坤) 등과 만세 시위를 계획하였다. 학생들은 대구 고등 보통학교, 신명 여학교 학생 대표들과도 밀의하여 시위에 동참하기로 하였다. 이리하여 대구에서 3월 8일과 10일 만세 시위가 발생하였고, 이는 경상북도 각 지역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김재범은 대구에서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4월 18일 대구 지방 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죄로 징역 10월형을 선고 받아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90년에 건국 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